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전문가들은 이러한 물음을 제기했다. 최근 정치권에선 한은의 정책 목표로 기존의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더해 새롭게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법안의 취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고용시장이 무너진 상황 속에서 고용안정은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법조문 하나만 바꾼다고 해서 한은이 고용안정을 뒷받침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3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은의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한은법 제1조 1항은 한은의 설립 목적으로 ‘물가안정 도모’를 명시하고 있으며, 2항은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한은의 양대 책무로 못 박은 것이다.
이에 개정안은 2항의 ‘금융안정’을 ‘금융 및 고용의 안정’으로 수정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은은 물가와 금융안정에 더해 고용안정이라는 3대 책무를 갖게 된다.
김 의원은 “최근 상당수의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의 목적과 역할이 물가안정 외에도 고용 안정 및 성장 등 복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며 “한국은행은 지나치게 물가안정만을 지향하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목적과 역할이 필요하며, 고용안정과 같은 실물경제 지원의 목적과 역할 등이 필요하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미국 공법(public law)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로 최대 고용, 물가 안정, 적정한 장기금리 등의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올해 들어선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경제가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자 연준이 통화정책의 무게추를 고용으로 옮겨가고 있다.
연준이 지난 9월 발표한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에도 기존의 물가 목표치(2%) 달성은 물론 완전고용 수준의 실업률에 이를 때까지 현행 금리를 유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의 취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한은이 고용안정 목표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시장이 유연한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고용시장이 매우 경직적이라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며 “더군다나 고용구조도 복잡해 실업률 등의 단편적인 고용 데이터만으로는 실제 고용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용시장과 고용지표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법을 개정한다고 하더라도 고용안정 목적 실행에 무리가 따를 것”이라고 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 2017년 발표한 ‘한국은행의 역할과 정책수단: 금융안정정책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도 한은이 통화정책만으로 다수의 목표를 추구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 한은법이 새롭게 개정되며 추가된 ‘금융안정’ 목표 역시 정책 수단을 확충하지 않는 이상 달성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동일한 수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틴버겐의 법칙’을 근거로 제시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책 목표 추가에는 찬성하지만 이와 동시에 한은에 추가적인 정책 수단을 갖게 해줘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수단으로 ‘기준금리 결정’ 하나만 쥐고 있는 한은에 있어서 다수의 목표 수행은 버겁다는 의미다.
대신 한은의 고용안정 목표 추가와 동시에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을 해결점으로 제시했다.
성 교수는 “거시경제와 관련한 감독 기능을 한은에 주고 미시적인 기능은 금감원이 수행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미국 연준 역시 거시경제에 대한 감독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