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다주택 종부세 내년 2배 뛰는데 16억 아파트 증여하려면 4억 세금
현금소득 없는 은퇴자 “감당 못해”… 양도세는 더 많아 주택처분 고민
전문가 “거래세 줄여야 시장 안정”
서울 광진구와 마포구에 전용면적 84m² 아파트 한 채씩을 보유한 주부 양모 씨(59)는 최근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할 목적으로 세무사를 찾았다. 내년부터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율이 약 2배 뛰는 데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올린다고 발표하면서 보유세 부담이 커진 탓이다. 광진구와 마포구 아파트 시세는 각각 16억 원, 17억5000만 원으로 양 씨가 내야 할 보유세가 올해 약 1500만 원에서 내년 4241만 원으로 뛴다.
보유세가 부담스러워 증여를 알아봤더니 두 아파트 모두 4억 원 이상의 증여세를 내야 했다. 차라리 팔까도 생각해봤지만 양도소득세 부담은 오히려 더 컸다. 양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세무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세금 인상으로 다주택자들이 ‘3중 세금 규제의 덫’에 빠졌다. 특히 현금 수입이 없는 은퇴 다주택자들의 고민이 크다. 가지고 있기에는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매년 내야 할 보유세가 급증하고, 증여나 양도를 하기에는 수억 원의 증여세나 양도세를 납부해야 하는 탓이다.
4일 부동산업계와 세무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위한 공청회를 연 데에 이어 3일에는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확정하면서 증여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 양경섭 세무그룹 온세 세무사는 “올해 8월 증여세 취득세율이 최대 12%로 오른 이후 증여 관련 문의가 끊겼는데, 최근 1주일 사이 상황이 반전됐다”고 말했다.
용산구에 시세 21억 원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최모 씨(56)는 올해 안에 이 빌라를 증여할 계획이다. 증여세로만 4억70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이 발표되면서 마음을 굳혔다. 그는 “현재 공시가격이 16억 원 수준인데, 현 시세의 90%까지 공시가격이 오르면 보유세가 급등한다”며 “매년 보유세로 수천만 원을 내다가 더 가격이 오른 후에 증여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증여세를 낼 바에는 증여 시기를 앞당겨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최 씨의 경우 현금 소득과 보유 자산이 충분해 증여라는 선택지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다주택자도 많다. 젊었을 때 주택을 한 채 사두고, 은퇴 직전 대출을 많이 받아 또 다른 주택을 사들인 이들이 대표적이다.
3년 전 퇴직한 이모 씨(63)는 서울 강동구 아파트에서 평생을 살다가 은퇴 직전 대출을 받아 성동구 아파트 한 채를 더 샀다. 매달 대출이자와 원금을 더해 150만 원 가까이 내고 있다. 그는 “한 달 생활비로 약 100만 원만 쓰고 있는데, 보유세 부담이 매달 수십만 원만 늘어도 감당하기 어렵다”며 “결국 아파트를 팔아야 할까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들에게 최소한의 ‘퇴로’를 마련해줘야 정부가 원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공시가격 현실화로 보유세 부담이 매년 급증하는 만큼, 양도세나 취득세 등의 거래세를 완화해주면 시장에서 매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사회과학부 학부장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보유세는 중간 수준이고 거래세는 가장 많이 내는 수준”이라며 “거래세라도 완화해야 그나마 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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