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할퀸 삶]10월 집값, 코로나 확산 때보다 올라
외환위기 땐 4년2개월 지나 회복
금융위기 당시 1년뒤 회복한 증시, 이번엔 4개월 만에 ‘원상복귀’
“경기침체 막으려 저금리 유지… 시중 돈, 부동산-증시 유입” 분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가져온 경제적 위기가 부동산 시장, 증시에 미친 영향은 과거 위기 패턴과 달랐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전국의 집값은 떨어졌다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4년 2개월이 걸린 반면에 이번 위기에선 줄곧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증시도 단기 충격에 그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회복 속도가 8개월 더 빠르다.
23일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104.6이었다. 이는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올 2월을 100으로 봤을 때보다 4.6% 높은 수준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 지수는 위기가 촉발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에 각각 11.8%, 1.7% 하락했다. 특히 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랐던 외환위기 때는 4년 2개월이 지난 뒤에야 집값이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주식시장도 과거 위기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코스피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12개월 정도 걸렸지만 이번 위기 때는 약 4개월로 회복에 걸리는 기간이 짧아졌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22개월이 걸렸다. 직장인 박모 씨(38)는 “경제가 안 좋다는 말들이 계속 나와 투자를 망설이는 사이 집값과 주가가 겁날 정도로 오르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물 지표들이 더디게 회복되는데도 집값이 오르고 증시가 빠르게 회복된 건 유례없는 저금리로 돈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올 9월 통화량(M2·광의통화)은 3115조8000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9.2% 증가했다. 2016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4∼8%대의 증가율을 보였던 통화량은 올 2월부터 매달 200조 원 넘는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낮추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 주식 등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집값이 평균 10% 떨어졌지만 올 2분기(4∼6월) 고소득 국가에선 집값이 오히려 5% 상승했다”고 전하며 그 원인으로 저금리를 꼽았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정책 금리를 평균적으로 2%포인트 낮추면서 대출에 따른 이자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3, 5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낮췄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0.50%로 사상 최저다.
근본적으로 이번 위기의 출발점이 과거 위기와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와 금융 시스템 내부의 누적된 문제가 터지면서 불거졌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공중보건 위기로 봉쇄 등 물리적 거리 두기가 실물 경제로 전이되면서 나타났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위기는 과거처럼 경제 기초체력이 약화돼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잡히고 빠르게 소비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정상 궤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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