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구제받는 방법이 소송뿐이라니”…‘대기업 갑질 폭로’ 중소기업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4일 20시 39분


“지금까지 어떠한 보상도, 피해구제도 받지 못하고 생사기로에 서 있습니다.”

육가공업체 ‘신화’의 윤형철 대표(46)는 2015년 거래처인 유통 대기업의 ‘갑질’을 폭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00억 원대의 과징금 처분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이는 유통업법을 적용한 역대 최대 금액이었다. 하지만 갑질로 당한 피해액은 5년 지난 지금까지 단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신화는 현재 법정관리를 받고 있다.

신화는 2011년까지만 해도 연 매출 680억 원에 달하던 건실한 중소기업이었다. 2012년 무렵 유통 대기업으로부터 납품 제안이 들어왔다. 2002년 동네 정육점에서 시작해 10년 넘게 노력한 결과가 결실을 맺는 듯했다.

윤 대표는 그 대기업에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돼지고기를 납품했다. 하지만 납품단가 후려치기, 각종 판촉비 떠넘기기 등으로 납품할수록 손해를 봤다. 손해액은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왔다.

참다못한 윤 대표는 2015년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당시 조정원은 윤 대표의 피해를 인정하고 이 대기업에 48억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대기업은 대형 포럼을 앞세워 윤 대표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이에 맞서 윤 대표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공정위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윤 대표는 소송에 대응하느라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했고, 대기업과 납품하면서 진 빚을 갚지 못해 2016년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당시 법원이 인정한 손해액은 109억 원이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해당 대기업이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4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법을 적용해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최고액이었다. 이후 대기업은 올해 4월 과징금을 모두 납부했다. 대기업이 윤 대표에게 제기한 명예훼손, 업무방해 혐의는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났다.

윤 대표는 “이때만 해도 곧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과징금은 정부 세수로 잡히지만, 피해 기업 구제에는 쓸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긴급경영 안정자금’과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회생기업 자금’도 알아봤지만 이 역시 지원조건이 안 돼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대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겨야만 피해 구제가 가능한 상황. 게다가 해당 대기업이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윤 대표가 제기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진행은 행정소송 결과가 확정된 이후로 밀렸다.

그는 “행정소송은 빠르면 1년 길게는 3년 걸리는데, 그 뒤에 소송을 진행하면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5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며 “지난 5년을 겨우 버틴 중소기업에 문을 닫으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피해를 구제받는 방법이 소송뿐이라면 어느 중소기업이 갑질 피해를 신고하겠느냐”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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