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할퀸 삶]불황에도 집값 뛰자 증여 서둘러
상반기 서울 아파트 증여 1만4781건
8년만에 최대… 작년 전체보다 많아
강남 3구 증여 열풍 특히 두드러져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 대표 A 씨(67)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을 겪었다. 3월 재무상태가 나빠지고 주가가 떨어지자 A 씨는 보유 자산 정리에 나섰다. 태어난 지 석 달된 어린 손자에게 수십억 원대 자산 중 4억 원 상당의 주식과 건물 지분 일부를 증여했다. 보유 주식 가치가 폭락해 주식을 증여해도 세금 부담이 줄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A 씨 덕분에 손자는 영문도 모르고 말 그대로 ‘금수저’가 됐다. A 씨는 “우리 정서상 미성년인 손자에게 수억 원을 증여한다는 비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또 언제 닥칠지 모르니 여유가 되고 증여할 수 있을 때 정리해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A 씨처럼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자산을 자녀에게 넘기는 부의 대물림이 크게 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이 최근 내놓은 ‘법원 등기 데이터를 활용한 국내 부동산 거래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서울시내 집합건물(아파트) 증여는 1만4781건으로 2012년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 한 해 증여 건수(1만1778건)보다 약 3000건이 더 늘어난 것이다. 자산가치가 하락하자 적극적으로 증여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코로나19 재확산 이후인 하반기에도 증여 열풍은 진행형이다. 한국감정평가원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올해 전체 서울시 아파트 증여 건수는 1만9108건이다. 특히 하반기 들어 증여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상반기 월평균 1398건에서 하반기엔 2679건으로 갑절 가까이로 늘었다. 매매 건수가 상반기 8050건에서 하반기 7999건으로 소폭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8∼10월 석 달간 매매 대비 평균 증여 비율은 46%에 이른다. 다주택자 세금을 피하기 위해 미리 증여를 하고 자산을 분산시키려는 자산가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증여 몰림’ 현상은 집값이 강세를 보인 서울 강남권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의 8, 9월 증여 건수는 각각 1092, 1037건으로 같은 달 매매 건수(각각 1073, 770건)보다 많았다. 전반적으로 주택 거래가 침체됐던 10월에도 강남 3구의 증여율은 매매 대비 88.5%로 조사됐다. 조경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은 “‘내 재산을 지키자’ ‘내 자식에게 물려줘서 기본이라도 갖춰 살게 해주자’는 게 현재 사회적 분위기”라며 “불로소득에 대해 더 과감한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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