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전세 살아 좋겠다는 정부 [데이터 비키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일 11시 07분


11월 30일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중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11월 30일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중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 줄 짐작 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더 놀랐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1월 30일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임대차 3법으로 70% 이상 국민이 계약갱신을 통해 주거 안정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준현 민주당 의원(세종을)이 계약 갱신 현황을 묻자 김 장관은 “현재 100대 중저가 아파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갱신율이 10월 기준 66.7%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중저가 아파트에 살던 이들이 열심히 피땀 흘려 노력해 ‘총알’을 확보한 다음, 더 나은 주거 공간을 찾아 이동하는 게 ‘국민 주거복지 향상’ 아닌가요? 실제 ‘전세 → 자가’ 이동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토부에서 올해 3월 펴낸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자가에 사는 사람 가운데 43.3%는 바로 직전에 전세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김 장관은 중저가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국민 가운데 역대 최대치인 3분의 2가 계속 중저가 아파트에 전세로 살게 됐다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니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아랫글을 그냥 우스개로만 치부할 수가 없습니다.

집권 1년 차 - 누구나 (서울) 강남 아파트 살 필요 없다.

집권 2년 차 - 누구나 서울 아파트 살 필요 없다

집권 3년 차 - 누구나 아파트 살 필요 없다

집권 4년 차 - 누구나 전세 살 필요 없다

집권 5년 차 - 누구나 살 필요 없다

우리는 왜 전세에 살까요? 주거실태조사에는 “귀댁이 현재 주택으로 이사한 이유를 보기에서 각 두 개씩 골라 기입해 주십시오”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현재 전세 거주자 가운데 ‘집값 또는 집세가 너무 비싸고 부담스러워서’ 이사했다는 답변은 14.7%(6위)였고,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이사했다는 답변은 4%(11위)였습니다.

‘직주근접(직장, 학교 등) 직장변동(취직·전근 등) 때문에’가 39%로 1위였고, ‘시설이나 설비가 더 양호한 집으로 이사하려고’가 36.3%로 2위였습니다. 적어도 지난해까지 전세 시장은 사람들이 ‘입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은 한번 얻은 전셋집에 얼마나 살까요? 같은 조사에 따르면 전세 거주자 가운데 현재 주택에 2년 이상 거주한 비율 ≒한 번 이상 재계약한 비율은 55.9%였습니다. 현재 주택에 5년 이상 거주했다는 답변도 19.9%가 나왔습니다.

집집이 상황과 처지가 달라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 정도면 ‘계약 만기로 인해서’ 이사를 했다는 전세 거주자 31.0%가 꼭 전세보증금 인상 문제로 이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조사 결과를 조금 더 찾아보면 전세 거주자는 미래에 대해서도 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재계약 시 상승할 임대료 또는 전세의 월세 전환에 대한 불안감’에 관해 물었을 때 전세 거주자 대답은 △매우 불안함 6.7% △조금 불안함 25.8% △별로 불안하지 않음 47.1% △전혀 불안하지 않음 20.4%로 나타났습니다.

67.5%가 ‘불안하지 않다’고 답했던 겁니다. 이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매매가는 올라도 전세가는 오르지 않는 상황이 제법 오래 이어졌으니까요.

서울 아파트는 분명 그랬습니다. 2017년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 지수를 100이라고 할 때 이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7월에도 이 숫자는 105까지 5%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그 사이 매매 가격 지수가 100에서 126이 됐다는 걸 고려하면 전세는 제자리걸음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컨대 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할 만큼 전세 시장이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정부와 여당에서 ‘임대차 3법’ 카드를 꺼내자 전셋값도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100에서 105가 되는데 3년이 걸렸던 전세 지수는 석 달 만에 다시 5가 올라 110이 됐습니다.

집을 사기에는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른 데다 ‘상급지’로 전세를 옮기는 것마저 부담스러운 상황. 그러면 전세 세입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스테이’(stay)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국토부 장관께서는 ‘계약 갱신율 최고 = 주거 안정’이라고만 생각하시니 목에 빵이 걸린 것처럼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 물론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께서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 쓰신 것처럼 “집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은 투표 성향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짐작하다시피 자가 소유자는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계속 전세에 살기를 바라신다면 이런 견해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

김 전 수석께서는 책에 영국 사례를 인용하셨지만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설마 정말 이런 이유로 언젠가 ‘누구나 살 필요 없다’고 해명해야 하는 세상을 만드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황규인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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