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은 지난 한 주를 뜨겁게 달궜던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살펴보려합니다.
지난 2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E-GMP는 ‘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의 약자인데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모듈화한 전기차 플랫폼이라는 뜻 정도로 보입니다.
E-GMP에는 배터리와 모터, 차체와 섀시 구조 등이 포함됩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모듈이면서 확장성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등에서 표준화 개념을 적용했다고 하는데요.
이에 따라 차량을 기획할 때부터 복잡성을 줄이고 하나의 플랫폼으로 다양한 차종과 차급의 제품 개발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설명입니다.
이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폭스바겐그룹과 제너럴모터스(GM) 등에서도 이미 선보인바 있습니다.
E-GMP를 공개한 당일인 2일에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가(종가 기준)는 각기 전일 대비 0.54% 하락, 1.67%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3일에는 종가가 2일에 비해 현대차 7.67%, 기아차 6.41% 상승했습니다.
최근의 주식 시장이 워낙 ‘불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대차와 기아차 같은 대형주가 이만큼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기업의 주가에는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기 마련인지라 글로벌 자동차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현대·기아차의 신차 사이클, 평균 판매가격 및 수익성 향상 등에 대한 예측도 반영이 됐겠습니다.
그렇지만 3일 하루의 유난히 눈에 띄는 주가 흐름은 E-GMP가 시장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만한 강점을 보여줬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인데요.
어떤 점이 이런 기대감을 만들어 냈는지,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E-GMP의 특징 그리고 기대와 우려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라는 파워트레인에 대한 지난주 휴일차담에 보내주신 큰 호응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벤츠의 신형 E-클래스로 느껴 본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세계[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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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뭐길래?
‘플랫폼’이 각광받는 시대입니다.
구글과 네이버, 다음카카오와 같은 기업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수의 이용자를 거느린 기업들은 자신들이 강점을 가진 서비스와 상품으로 바탕으로 구축한 튼실한 ‘승강장’ 위에 다양한 상품과 비즈니스를 얹어서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을 쓰는 많은 사람들은 지인의 생일이 뜨는 걸 보면서 ‘기프티콘이라도 하나 선물해야 하나?’를 고민하게 됩니다.
지인들끼리 살뜰하게 서로의 생일을 챙길 수 있게 해주면서 기업은 기프티콘 구매에 따른 수익을 거둘 수 있으니 말 그대로 일석이조입니다.
자동차 업계로 돌아와서, 자동차 업계에서도 ‘플랫폼’이라는 말을 꽤 씁니다.
그렇지만 IT 기업들이 보여주는 저런 기민한 플랫폼 기반 사업과는 결이 좀 다릅니다.
하나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그 위에 다양한 종류의 차체를 얹어서 차를 만들 수 있는, 기본적으로 보면 ‘효율화’를 위한 방식입니다.
A라는 플랫폼을 개발한 다음에 A-1, A-2, A-3 등의 다양한 모델을 개발해 출시하자는 것이지요.
플랫폼은 내연기관차 시대에도 존재하던 개념입니다.
차의 뼈대를 새로운 차종을 개발할 때마다 각기 설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니 같거나 비슷한 크기의 차량은 하나의 플랫폼을 활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폭스바겐그룹에서는 EVO 플랫폼을 활용해 폭스바겐은 투아렉, 아우디는 Q7, 포르쉐는 카이엔을 생산하는 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폭스바겐그룹은 2018년 9월에 MEB(Modular Electric Drive Matrix)라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제너럴모터스(GM)도 2020년 3월에 BEV3라는 3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들 기업은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그룹 내의 다양한 브랜드에서 다수의 전기차 출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그룹의 경우 산하 4개 브랜드에서 2022년까지 27종의 MEB 플랫폼 기반 모델을 내놓겠다는 계획입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상당히 많은 차종의 개발을 예고하고 있는 셈인데요.
워낙 다수의 전기차 모델을 쏟아내야 할 시점인데다 각 사의 플랫폼이 다양한 차급에 유연하게 적용 가능한 개념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전기차 플랫폼에는 전기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배터리 시스템에 대한 기본 개념과 동력 특성 등이 포함됩니다.
차종마다 변화는 있겠지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최대 주행거리, 충전 시간, 제로백 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현대차그룹의 E-GMP를 포함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모두 차체 바닥에 대용량 배터리 시스템을 설치하는 모습 등은 전반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 4년 갈고 닦은 E-GMP… ‘5분이면 111.1km’ 초고속 충전에 눈길
경쟁사들 가운데서는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량을 이미 팔고 있는 곳(폭스바겐의 ID.3 등)도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전용 플랫폼 공개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닙니다.
4년이 넘는 개발 기간이 필요했다는 E-GMP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 하나를 꼽자면 ‘충전 시간’입니다.
현재 국내·외의 대다수 급속 충전 인프라는 400V 충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E-GMP에는 800V 고전압 충전 시스템을 기본으로 적용되고 이에 따라 초고속 충전기를 이용할 때 18분 내 80% 충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E-GMP 플랫폼은 1회 완충으로 5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스펙입니다.
그렇다면 5분을 충전하면 111.1km가량을 달릴 수 있다는 ‘산술적’인 계산이 나옵니다.
저는 기존의 전기차 충전 시스템에서도 급속 충전기의 경우 충전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연기관차의 ‘총으로 쏘는 주유’와는 비교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800V를 기반으로 이렇게까지 전기차 충전 속도를 올릴 수 있다면 전기차의 가장 큰 단점을 상당 부분 희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대고 난 뒤에 충전기를 차에 꽂고 난 뒤를 기준으로 5분이면…
커피숍까지 걸어가서 커피를 주문한다고 가정해도 아직 커피가 나오기도 전일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100km 주행마다 휴게소를 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화장실 들렀다가 커피 주문하고 받아서 몇 모금 마시고 출발하는 정도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15분 정도면 배터리의 절반 이상을 채울 수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400V 급속 충전 시스템이 대부분인 상황이니 당연한 조치기인 하겠습니다만, 별도의 부품 없이 400V와 800V 충전 시스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1회 충전 500km 주행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런 점도 중요합니다만 사실 500km라는 주행거리는 E-GMP라는 플랫폼에서의 목표 주행거리에 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앞으로 출시될 개별 차종에서는 저마다 다른 최대 주행거리가 설정될 것이고 때로는 같은 차종 안에서도 긴 주행거리와 짧은 주행거리 모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배터리를 더 사서 꽂으면 됩니다. 가격이 비싸져서 문제일 뿐입니다.
● 움직이는 배터리가 되는 차 그리고 새로운 실내 공간
E-GMP 공개 전에도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명확하게 공개된 V2L(Vehicle to Load) 기술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전기차가 추가 장치 없이 외부에 220V를 비롯한 일반 전원을 공급하는 기술인데요.
일반 주택의 공급 계약전력인 3kW보다 더 큰 3.5kW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배터리 용량에 따라 17평형 에어컨과 55인치 TV를 동시에 약 24시간 가동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설명입니다.
전기차가 일종의 ‘움직이는 배터리’가 되서 집밖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캠핑과 차박이 각광받는 최근의 트렌드에도 부합합니다.
기존의 내연기관차도 추가적인 장치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지만 효율성과 전력의 크기 측면에서 상당한 제약이 있었던 상황에서 전기차의 고전압 배터리를 이용한 전력 공급은 이용자들에게 상당한 편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E-GMP를 공개하면서 “모빌리티의 사용성을 일상으로 확장하겠다”고 외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전기차의 새로운 공간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한 번 짚어볼만 합니다.
현대차그룹은 E-GMP가 “짧은 오버행(차량 끝에서 바퀴 중심까지 거리), 길어진 휠베이스(앞 바퀴와 뒷 바퀴 차축간의 거리)로 개성 있는 디자인이 가능하며 슬림해진 콕핏(운전석의 대시보드 부품 모듈)은 탑승공간을 확장시켜준다”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엔진과 냉각 계통이 사라진 전면부를 짧게 줄이면서 실내 공간이 자연스럽게 넓어지는 것입니다.
구동력이나 배기가스를 차량 뒷면으로 전달하지 않아도 되는 특징 때문에 탑승공간의 바닥 자체가 편평해지는 점 역시 실내 공간 설계에서는 기대할만한 부분입니다.
● 배터리 안전성 확보가 1순위 과제
E-GMP를 향한 시선에는 이런 기대와 더불어 당연히, 우려도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아이오닉5를 비롯한 E-GMP 기반 전기차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저는 ‘안전성’을 꼽고 싶습니다.
리콜이 진행된 ‘코나EV’를 보면서 많은 고객들이 전기차의 고전압 배터리가 가진 화재 위험성을 목격했습니다.
전용 플랫폼 기반의 차량으로 내년을 전기차 도약의 원년으로 정한 현대차그룹에서 이런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사실 현대차그룹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GM의 베스트셀링 전기차 볼트 역시 화재 우려 때문에 완충했을 때 저장되는 에너지의 크기를 낮추는 리콜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현재 전기차의 화재 발생 비율이 내연기관차보다 높아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더 큰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찌됐건 장기간 공 들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공개한 이상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더 이상 ‘화재’라는 이슈와는 엮이지 않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 ‘고전압 충전기’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
충전 인프라 역시 중요한 숙제입니다.
E-GMP에 800V 초고속 충전시스템을 적용하더라도 800V는커녕 기존의 400V 급속 충전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800V 혹은 더 높은 전압을 이용해 충전 속도를 높이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이런 충전 인프라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일 수 있겠습니다.
고전압 충전 시스템은 이제 전기차 충전 인프라라는 문제에서 충전기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빠르게 충전할 수 있는 충전 인프라가 늘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수의 전기차가 높은 전압의 전기를 뽑아 쓰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력 공급망에 전기차 충전기를 ‘덧붙이는’ 수준으로는 한계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한국도로공사와 협력해 800V 고전압 충전시스템을 원활하게 쓸 수 있는 350kW급 충전기를 12개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하고 초고속 충전기 인프라를 늘려가겠다는 계획인데요.
점점 더 늘어나겠지만 ‘12개의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말이 보여주듯 고전압 충전시스템이 순식간에 다수를 차지하기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 ‘롤모델’ 제시됐지만 개별 차종의 경쟁력이 관건
E-GMP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앞으로 출시될 차량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플랫폼에 바디가 결합된 된 차의 디자인은 물론이고 충전 및 주행 성능, 내장 인테리어 등이 모두 다른 차량이 차례로 출시될 것입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44개의 전동화 모델을 내놓는데 이 가운데 11종이 전용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올 9월에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론칭한 현대차는 내년부터 3년 동안 준중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중형 세단,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선보입니다.
차급이 판이한 만큼 주로 공략하려는 고객층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차량의 특성 역시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E-GMP가 보여주는 것은 현대차그룹이 전기차로 구현할 수 있는 ‘하나의 이상적 모델’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1회 충전 500km 주행을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꽤 짧은 주행거리를 가진 차량이 출시될 수도 있습니다.
또 고성능 모델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시간 3.5초 미만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모델에서 이 정도의 가속력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고객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은 E-GMP가 아니라 각각의 모델이기 때문에 어떤 디자인과 강점으로 시장을 공략할 것인지는 여전히 각 모델의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 2021년 달굴 전기차 대격돌
테슬라가 질주하는 가운데 세계 전기차 시장에는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전용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도 ‘니로EV’와 ‘코나EV’ 등을 앞세워 올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4위권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공개한 폭스바겐그룹과 GM에 현대차그룹까지 E-GMP로 승부수를 던지면서 내년은 테슬라의 독주에 기존의 완성차 기업가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전기차 대전(大戰)’이 벌어지는 한 해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누가 승자가 될지 쉽사리 점칠 수 없지만 E-GMP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E-GMP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소개 영상을 살펴보시거나(https://youtu.be/BTvai7268) 3일부터 열흘 동안 서울 강남구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진행되는 팝업 전시에 한번 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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