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입점업체에 부당 임대차 계약서 제시
"매장 리뉴얼하겠다…14일 안에 매장 뺄 것"
직매입한 상품 113억어치 '부당 반품'하기도
백화점은 매출 저조 브랜드에 '행사' 강요해
거절 시 매장 이전·백화점 주요 행사서 제외
롯데 "공정위 제재 받아들였다, 대부분 고쳐"
“매장 임대차 거래 계약 종료일은 ‘롯데마트의 리뉴얼 시점’이다. 계약 기간 중 롯데마트가 리뉴얼 공사 착수 시점을 적은 서면을 보내면, 임차업체는 그 서면을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매장을 비워야 한다.”
롯데마트(롯데쇼핑 마트 부문)는 지난 2012년 1월~2015년 1월 매장 임차업체 103곳과 132건의 계약을 맺으면서 이런 내용의 부당한 계약서를 제시했다. 통상 임대인과 임차인은 특정 날짜부터 연 단위의 일정 기간을 정해 매장 임대차 계약을 맺지만, 롯데마트는 자사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이에 공정위는 “통상 거래 기간이란 특정 날짜부터 특정 날짜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관행상으로도 이렇게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계약 종료일을 특정 날짜로 명시하지 않은 롯데마트의 행위는 계약서에 ‘거래 기간’을 명시하도록 하는 대규모유통업법(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했다.
롯데마트는 크리스마스·김장철 등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시즌 상품의 반품이나 손해를 납품업체에 떠넘기기도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2012년 1월~2015년 4월 납품받은 상품 중 일부가 “시즌 상품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업체 96곳에 113억4000만원어치를 돌려보냈다. 이들은 대부분 롯데마트가 직매입(상품을 직접 사들여 판매하고, 팔리지 않은 재고 비용은 스스로 떠안기로 하는 거래 형태)한 상품이었다.
롯데마트는 납품업체와 직매입 시즌 상품의 반품 계약을 맺을 때 행사의 종류·기간, 행사별 반품 가능한 상품·상품군 등 구체적 조건을 서면으로 약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롯데마트가 반품한 상품 중에는 매입한 지 27개월이나 지나 그 가치가 상당 부분 훼손된 것들도 1억8000만원어치나 포함돼 있었다.
당시 롯데마트는 “상품 매입 시점에 납품업체와 반품 조건을 구체적으로 협의했다”고 항변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롯데마트가 납품업체와 (구두로) 협의했다고 하더라도 그 즉시 구체적 반품 조건이 적힌 서면을 내줬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마트는 또 “구체적 반품 조건을 적어 약정하는 것은 업계 현실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공정위 조사 결과 경쟁사는 시즌별로 ‘개별 약정서’를 따로 만들어 ‘시즌 행사의 종류’와 ‘반품 가능한 상품·상품군’을 적어두고 있었다.
공정위는 “롯데마트와 거래한 납품업체는 어떤 상품이 언제 얼마나 돌아올지 예측을 할 수 없었고, 롯데마트가 시즌 상품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반품을 요구하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면서 “납품업체는 반품 가능한 상품은 단가를 올리는 등 협상 조건을 조정해야 하지만, 롯데마트와 거래할 때는 그럴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입점·납품업체 대상 불공정 행위는 롯데백화점(롯데쇼핑 백화점 부문)에서도 벌어졌다. 롯데백화점은 2012년 1~5월 입점·납품업체 35곳의 브랜드 60개에 “경쟁 백화점의 월별·특정 기간별 매출 내역을 가져오라”고 했다. ‘경쟁 백화점 매출 대비율’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갤럭시·폴로·랑방 등 유명 브랜드 다수가 경쟁 백화점 매출 내역을 요구받았다.
롯데백화점은 이 매출 대비율을 바탕으로 경쟁 백화점보다 실적이 저조한 브랜드에는 “판촉 행사를 열라”고 요구하거나, “경쟁 백화점에서 판촉 행사를 진행하지 말라”고 강요했다. 이에 응하지 않은 브랜드에는 마진(수수료)율을 높였고, 매장 위치를 옮겼으며, 중요 행사에서 배제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A사는 당사 (판촉) 행사 전개 협조도 부진에 따라 행사 미진행 페널티 (부여) 중” “B사는 (판촉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페널티(부여 중)로 진행 안 된다” “11월 창립 행사 시 단독 (판촉) 행사 제의를 거절해 3일간 페널티를 부여했다” 등을 적은 롯데백화점 일부 지점의 내부 문건이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롯데백화점은 “경쟁 백화점 매출 자료는 입점·납품업체가 자발적으로 제공했고, 해당 자료는 시장 동향과 소비자 선호도 등을 파악하는 데 썼다”고 주장했지만, 공정위는 “입점·납품업체가 영업 비밀인 타 백화점 매출 자료를 자발적으로 공개할 이유가 없고, 해당 자료가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데 활용된 사실이 있어 그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공정위는 롯데마트에 8억6000여만원, 롯데백화점에 45억7000여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금액에는 다른 불공정 행위 몫도 일부 포함됐다.
시기적으로 보면 이런 제재는 이미 과거형이지만, 공정위는 여전히 롯데 유통 계열사를 주시하고 있다. 이전 사례들이 개선되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다.
공정위가 유독 롯데를 주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재가 잦고, 과징금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대규모유통업법을 어겨 과징금을 부과 받은 상위 6대 사건 중 4건이 롯데 유통 계열사(1위 롯데마트·4위 롯데백화점·5위 롯데슈퍼·6위 롯데홈쇼핑)다.
롯데마트가 부당한 임대차 거래 계약서를 쓴 것이 2012년 일인데, 롯데 유통 계열사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대규모유통업법을 어기기도 했다(2018년 롯데하이마트). 특히 롯데하이마트의 경우 조사 과정에서 문제점을 시스템적으로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아 공정위의 공분을 샀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른 유통사는 대부분 조사·심의 과정에서 ‘내부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고쳐 납품업체 대상 불공정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롯데하이마트는 ‘문제가 됐던 임직원 교육·점검을 강화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식이다. 개선 의지가 부족하다고 봤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쇼핑 측은 “공정위의 제재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대부분 시정한 상태”라면서 “일부 계열사가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공정위 측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뉴시스에 밝혔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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