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기 자본 시장에 국내기업은 물론 근로자까지 방어막 없이 사냥감으로 내던져지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복합기업집단 감독법 제정안)과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기업 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굵직한 법안들이 잇따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튿날인 10일 경영계는 하루종일 ‘부글부글’ 끓었다.
국회는 전날(9일) 열린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경제3법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관련 3법(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 통과로 당장 기업들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다중대표소송제’라는 부담스러운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기업들은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의 경우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도입을 반대해왔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란 감사위원회위원 중 적어도 1명 이상은 주주총회 결의로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하도록 한 제도다. 당초 정부여당안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최대 3%까지만 인정하도록 했다가, 본회의 의결에서는 사외이사인 감사를 선임할 때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최대 3%씩 의결권을 인정하도록 완화했지만 기업들은 큰 효력이 없다고 비판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모 펀드가 여러 개 투자회사별로 지분을 3%씩 쪼개서 보유해 공격해 올 경우 대주주보다 훨씬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질 수 있다”며 “특히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라는 정부 권고를 충실히 따라 지주사로 전환한 기업들의 경우는 더 취약해 뒷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공정거래법상 상장한 지주사는 자회사의 지분을 20%, 비상장 지주사는 40%이상 소유해야 하는데, 이 요건을 충실히 지켜 지주사로 전환했지만 이번 상법 개정으로 지분에 상응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에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이 지분율도 상장 30%, 비상장 50%로 상향됐다.
예를 들어 LG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의 경우 지주사이자 최대주주인 ㈜LG의 지분율이 33.67%이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에서는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개별적으로 최대 3%씩 의결권을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LG 외에 LG전자 지분율이 눈에 띄게 높은 특수관계인이 없어 사모펀드의 표적이 될 경우 방어에 취약하다.
경영계는 투기 자본 세력이 추천한 감사위원이 선출되면, 회사 영업비밀과 같은 핵심 경쟁력이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감사위원은 이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기임원으로서 회사에 영업에 관한 보고를 요구하거나 회사의 업무 및 재산상태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과거 국내 기업이 성장제일주의로 덩치를 키울때 발생한 과거의 부작용은 고쳐야 하겠지만 현재는 많은 기업들도 지주회사 체제로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해 국제 무대서 경쟁하고 있지 않느냐”며 “정부가 바람직한 지배구조로 권장한 지주회사 체제가 오히려 투기 자본의 경영개입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투기 자본의 단기 수익을 위한 약탈적 경영개입은 결국 근로자의 고용안정성도 희생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들에 가장 민감한 부분이 경영권인데 이번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은 이를 건드린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봐도 감사 위원 선출 때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한는 선례가 없다는 점을 누차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허탈해 했다.
국회 등에서 수차례 재계 입장을 전했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경우 전날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자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리겠나. 할 말이 없다”며 깊은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급속한 기업활동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영계는 우려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가 상장사 주식의 1만분의 50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해당 상장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 대기업 고위임원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초반에 이익을 내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때로는 모험적으로 투자를 해야 할때도 있다”며 “헤지펀드가 이를 ‘기업에 손해를 끼쳤다’며 트집잡아 소송을 제기할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관련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전날 논평을 통해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 등 개정 노조법은 노사관계의 악화와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할 것이므로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 방어권을 허용해야한다. 개정 법률의 시행 이전에 보완책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노조법은 그나마 ILO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수긍이 가능 측면도 있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제도”라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는 기업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것 같아 허망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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