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손발 묶어놓고 “고용 늘려라”… 재계 “도와주는 정책은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8일 03시 00분


[2021 경제정책방향]文대통령, 내년 ‘경제 대전환’ 역설

심각한 대화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확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오른쪽)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심각한 대화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확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오른쪽)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무리 말을 해도 평행선을 걷는 것 같았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확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경제 3법’이 기업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한 데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같이 평가했다. 기업의 손발을 묶어 놓은 채 고용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주문에 대해서도 “재계를 응원해 주는 정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회의에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공개적으로 “규제 방식과 내용에 아쉬움이 많다”고 했겠느냐는 평가도 있었다.

정부는 내년에 소비와 투자 여력을 총동원해 경기 반등을 이끌어낸다는 방침이지만 재계에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견해다.

○ 재계 요구 수용 대신 “고용 늘려라”

이날 문 대통령은 올해 정책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며 내년에 ‘경제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예측하고 계획한 대로 3분기(7∼9월)부터 성장률 반등을 이루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성장률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3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라는 점에서 22년 만의 최저치로 추락한 2분기 성장률(―3.2%)의 기저효과가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반도체 등 일부 종목을 빼고는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여전히 바닥권이다. 이날 한국은행이 내놓은 기업경영분석 자료에 따르면 기업 매출액(외부감사 대상 기준)은 작년 1분기부터 7개 분기 연속 뒷걸음질쳤다. 100대 상장사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뺀 나머지 98개사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21.9% 줄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내년 경제정책방향의 목표를 ‘강한 경제 회복’과 ‘선도형 경제로의 대전환’이라고 정의하고 “공정경제 3법은 (이를 위한) 도약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재계와의 간극을 재차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고용을 살리는 데 공공과 민간이 함께 총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며 재계의 역할을 당부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경제 3법을 포함해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재계가 우려했던 법안들을 대거 통과시킨 마당에 이제 와서 고용을 늘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적지 않다.

이날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에서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부분 한국판 뉴딜과 관련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내용에 그쳤고 나머지 산업에 대해선 별도의 청사진 없이 “핵심 규제혁신을 추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 실장은 “기업들은 전대미문의 악조건 속에서도 투자와 고용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기업정책 전환과 적극적인 규제개혁에 정부가 힘써야 한다”고 했다.

○ 내년 성장률 목표 3.2% 제시… 외국선 2%대 전망

기획재정부는 이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로 제시했다. 반도체 업황과 글로벌 경기 개선 등에 힘입어 내년에는 역성장(올해 ―1.1%)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3.0%)를 웃돈다. 한은의 전망치도 금융통화위원회 일부 위원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던 수치인데 이보다 0.2%포인트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도 각각 한국이 내년에 2.8%, 2.9%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이처럼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용카드 추가 소득공제와 온라인 소비 바우처·쿠폰 등 내수회복 대책과 110조 원에 이르는 공공 민자 민간 투자를 제시했다.

하지만 국내 백신 수급 상황이 여전히 불투명한 데다 한계에 몰린 소상공인과 노동 취약계층의 붕괴가 내년부터 본격화할 경우 소비 회복이 정부 기대보다 더디게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와 국회가 내년 초부터 본격화할 선거 국면에 맞춰 무리하게 소비 진작책을 쓰다가는 방역과 경제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남건우 / 허동준 기자
#고용#재계#정책#문재인#경제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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