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부동산 시장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비장한 어조였다.
하지만 올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14일 조사·KB부동산 기준)은 전년 대비 9.44% 올라 2011년 9.6%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전세가격마저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급등하며 전국은 7.42%, 서울은 12.02% 올라 2011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급등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경기 파주시다. 잠잠했던 파주의 집값은 지난달 19일 인근 김포시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직후 급등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10월만 해도 6억∼7억 원 선이었던 파주 운정신도시 센트럴푸르지오 전용 85m²은 지난달 26일 9억1000만 원에 팔렸다. 불과 한 달여 만에 2억∼3억 원 오른 것. 결국 파주도 18일부터 조정대상지역이 돼 대출·세제 규제를 받게 되면서 수도권 대부분이 규제지역이 됐다. 이처럼 ‘비규제지역인 A지역 급등→A지역 조정대상지역 지정→A지역 인근 비규제지역인 B지역 급등→B지역 조정대상지역 지정’이 올해 내내 반복되며 전국을 돌아가며 집값이 급등했고 그 결과 국토의 상당 부분이 규제지역이 됐다. 임대차 2법으로 전세가격마저 급등하며 전국을 휩쓴 집값 오름세가 최근 다시 서울을 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 전체 상황을 보고 종합 대처하는 대신 단기적 대응에 급급해 시장 왜곡을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 ‘수·용·성’과 풍선효과
시작부터 그랬다. 올해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12·16부동산대책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출발했다. 12·16부동산대책에서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시세 15억 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 서울의 고가주택을 대출 받아서는 사기 어렵도록 규제했다.
투자 수요는 다른 지역으로 흘러넘쳤다. 이른바 ‘수·용·성’으로 불린 경기 수원, 용인, 성남 등 상대적으로 주택가격이 낮으면서 규제지역이 아니거나 조정대상지역이어서 대출 규제 영향을 덜 받는 곳으로 수요가 쏠린 것이다.
1월부터 가격 오름폭이 커지기 시작한 수원 집값은 2월 첫째 주와 둘째 주 KB부동산 주간통계 기준으로 각각 1% 이상 폭등했다. 결국 정부는 2월 20일 수원시 영통 장안 권선구와 의왕시, 안양시 만안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거래가 잠잠했던 부동산 시장은 5월부터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월과 5월 각각 0.75%, 0.5%로 낮추면서 ‘0%대 금리’ 시대가 열리자 불어난 유동성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노·도·강’과 패닉바잉
정부는 6·17대책을 발표하고 경기 김포시 파주시 등을 제외한 수도권 대부분 지역과 대전, 충청 일부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했다. 규제지역 주택을 매입하며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6개월 내에 전입하도록 하는 등 전세를 끼고 사는 ‘갭 투자’하는 사람들을 투기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제재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패닉바잉’(공포 매수)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1∼5월 많아도 한 달에 3000건 수준이던 30대 이하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6, 7월 합쳐 9920건으로 늘었다. 20, 30대 젊은층이 ‘이대로라면 영영 내 집 마련 못 한다’는 불안에 대출규제가 시행되기 전 대거 주택 매입에 나섰다. KB부동산 기준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6월 전월 대비 5.15%, 7월 3.31% 오르는 등 이른바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구) 등 서울 강북지역이 주로 급등했다. 교육환경이나 직주근접성은 양호하면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아파트로 몰린 것이다.
결국 정부는 6·17대책 한 달도 되지 않아 7·10부동산대책을 발표하고 6월 대책에서 빠졌던 부동산 세제를 대폭 강화했다. 또 태릉골프장 등 수도권 국공유지와 유휴부지를 개발하고 공공재개발을 확대하는 등의 8·4공급대책을 내놨다.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을 동원해 민간 공급을 틀어막은 상태에서 공공을 통해서만 공급하려 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사업은 집값과 관계없이 노후 주택을 살기 좋은 주거지로 바꾼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처음엔 3기 신도시로 공급한다고 했다가 다시 서울 도심 역세권 공급을 언급하는 등 정부의 중장기 공급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전세대란과 ‘쌍끌이’ 상승
올해 부동산 시장의 복병은 전세였다. 7월 29일 정부가 전격적으로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을 규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시행하며 전세시장마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땔감’은 그 전부터 가득 쌓여 있었다. 지난해 6월부터 서울 전세가격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매매가격이 워낙 많이 올라 전세가격이 따라 오르기 시작한 것. 1주택자라도 투기과열지구에서는 2년 이상 거주해야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등 실거주 의무도 강화된 상태였다. 초저금리 시대에 보유세까지 대폭 올리겠다고 예고해 집주인으로서는 전세로 세를 줄 요인이 줄어들었다. 임대차2법은 이 ‘땔감’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겼다.
이전엔 전세가 오르면 매매가격은 내리고, 매매가격이 오르면 전세는 내렸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전세와 매매가 모두 올랐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매매를 억제하기 위해 실거주 의무를 강화해 결국 전세시장을 자극하는 식으로 정책효과가 서로 충돌, 상실되고 말았다”며 “매매-전세시장은 서로 연계됐는데 정부가 시장을 종합적으로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돌고 돌아 다시 들썩이기 시작하는 강남
전세가격 상승세가 자극한 투자 수요는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이전부터 오름세였던 세종 집값이 국회 이전 논의로 폭등세를 보였고 부산, 경기 김포시 등의 집값도 크게 올랐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급등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했지만 물길은 다시 경기 파주시와 경남 창원시, 울산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부는 결국 한 달 만인 18일 전국 37개 지역을 무더기로 규제지역으로 지정했다. 전국에 조정대상지역만 111곳으로 시군구 226곳 중 절반에 가깝다. 전국이 규제 사정권에 들었지만 오히려 서울 매매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특히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으며 서울 강남구 송파구 등의 매매가격 상승률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16대책이 나오기 직전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전월세 가격 불안으로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 전국적으로 집값 오름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생애최초 주택마련 등에 규제를 풀고 전세를 주는 다주택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기존 정책방향을 제한적으로라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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