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이 역대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어섰다. 기업 부채까지 합하면 민간이 진 빚은 GDP의 2배가 넘는다. 정부와 공기업 등의 나랏빚까지 함께 불어나면서 국가부채 관리에 경고등이 커졌다. 금리가 오르면 취약계층과 부실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101.1%로 조사됐다. 1년 동안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보다 가계가 진 빚이 더 많다는 뜻이다. 기업 부채까지 더한 민간신용은 GDP의 211.2%로 조사됐다. 197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다. 가계신용에는 자영업자, 비영리단체 등이 진 빚도 포함된다.
한은은 “가계신용은 주택 매매, 전세 관련 대출이 크게 증가한 데다 생계자금 및 주식 투자자금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올해 들어 증가세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가계신용 증가 폭은 전 세계 평균을 웃돌았다. 올 2분기(4~6월)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보다 3.4%포인트 상승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조사대상국 43개국 평균(2.1%)을 웃도는 수준이며 11번째로 증가폭이 컸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부채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소득 하위 3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평균 연소득 1648만 원)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LTI)은 328.4%였다. 연소득의 3배가 넘는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LTI는 지난해 말보다 15.5%포인트 증가했다. 고소득층(소득 상위 30%) 증가 폭(7.1%)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피해가 저소득층에 집중되면서 소득이 제자리걸음 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지난해 말에 비해 0.3% 늘어난 반면 부채는 5.3% 증가했다.
빚을 내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나서기 시작한 20,30대의 부채 상승세도 가팔라졌다. 30대 이하 LTI는 지난해 말보다 14.9%포인트 오른 221.1%로 조사됐다. LTI 비율 자체는 60대, 40대보다 낮지만 증가 폭은 다른 연령대 중 가장 크다.
한은은 경기 회복이 부진하면서 집값이 떨어지고 시장금리가 오르는 충격이 나타나면 가계대출의 부도율이 0.36%포인트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로 인해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이 약화되면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부실 규모는 충격이 없을 때보다 5조2000억 원 늘어난 18조7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민좌홍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금리 하락 등이 앞으로도 지속된다고 보긴 어렵다.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달라지면 가계 상환 능력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나랏빚(공공부문)은 1132조6000억 원으로 1년 만에 54조6000억 원 늘었다. GDP 대비 비율도 59%까지 올랐다. 공공부문 부채 비율은 2015년부터 4년 연속 감소세였지만 지난해 오름세로 전환했다. 공기업을 제외한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42.2%로 1년 전보다 2.2%포인트 상승했다. 정부는 “주요 선진국 대비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지만 올해 코로나19 대응으로 중앙정부 채무가 급격하게 불어난 만큼 전체 나랏빚 증가 속도가 더 가팔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