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직장인 박모(39·남)씨는 물가가 낮다는 얘기만 들으면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수년 전 이 지역에 집을 살까 고민했던 박씨는 지방 근무가 많은데다 이미 주택가격이 오를대로 올랐다는 얘기에 전세에 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집값이 치솟고 전세 가격마저 수억원이나 오르자 막다른 길에 몰린 심경이다. 박씨는 “집값이 이렇게 올랐는데 물가가 낮다는게 말이 되나”며 “정부가 딴 나라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최근 가파르게 오른 주택가격과 달리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가 매우 낮자 일각에선 “집값과 물가가 따로 논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1월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54% 오르며 지난 7월(0.61%) 이후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반면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1% 떨어졌다. 지난 10월 -0.6%에 이어 두 달 연속 하락이다.
이는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에 주택가격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경기불황 속에서는 소비자물가와 집값의 괴리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 측은 “소비자물가는 소비자들이 1년 간 소비하는 460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데, 주택은 소비재라기보다는 자산의 성격이 있어서 소비자물가 계산에는 넣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전·월세값 변동은 소비자물가 통계에 반영된다. 통계청은 세입자가 전·월세주택을 매월 사용하는 대가로 일정금액을 지불한다고 봤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최근의 전월세 오름폭이 매우 가팔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월세 역시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와 여전히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11월 기준 전국 전세가격과 월세가격은 전월 대비 각각 0.66%, 0.18% 올랐다. 올 들어 모두 최고치다. 반면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에 반영된 11월 전세, 월세 지수는 전월 대비 각각 0.14%, 0.06% 상승하는데 그쳤다.
이는 통계청의 전·월세 지수 조사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 통계를 내기 위해 전국 38개 주요 시·도의 약 1만800개 임차가구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를 실시하는데, 전·월세의 경우 조사대상 가구가 지불하는 평균금액의 변동을 통계에 반영한다. 신규 세입가구의 계약시 적용되는 전·월세 ‘시세’ 변동을 그대로 반영하는 한국감정원과는 차이가 있다.
이를 두고 통계청 측은 “한국감정원의 시세방식에 비해 소비자물가조사에 반영된 전·월세 상승· 하락폭이 적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한국감정원의 시세방식은 주택경기흐름을 판단하거나 신규로 전세를 계약할 때 참고자료로써 좋은 지표이기는 하지만, 세입자가 부담하는 비용의 흐름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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