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젠은 어떻게 코로나 진단키트 시장을 선점했나
제품 전량 폐기 위험성 있었지만 국내 첫 환자 나오기전 개발 착수
다른 제품 개발 멈추고 키트 집중… “손해봐도 책임 다하자” 공감대 속
부서-직급 막론하고 밤까지 작업… 15년 기술력-자동화 시스템 바탕
신속하고 과감하게 상황 대처… 국내시장 잡고 세계 67개국 수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씨젠의 분자진단키트 제품 개발 연구소. 씨젠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다. 씨젠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유례없는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쓴 올 한 해,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 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올 상반기 기준 국내에도 20여 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발 빠른 대응으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기업이 등장했다. 이 기업은 국내 시장 점유율의 과반을 차지함은 물론이고 세계 67개국에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수출하는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바로 올 7월 코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기준 2위로 오르며 화제가 된 바이오 기업, 씨젠이다. 백신 개발 소식이 이어지면서 현재는 3위로 내려왔지만 씨젠은 명실상부한 코스닥 바이오 대장주로 자리매김했다. 씨젠이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단 2주. 이 업체가 발 빠른 제품 개발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0년 12월 2호(311호)에 실린 케이스 스터디를 요약해 소개한다.
○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오기 나흘 전인 2020년 1월 16일, 천종윤 씨젠 대표는 연구팀에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을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조차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파는 제한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감염병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경우 개발한 제품을 전량 폐기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씨젠은 폐렴, 결핵과 같은 호흡기 감염증 진단키트 제품 라인을 보유하고 있었고, 코로나19 감염증이 강한 유행성 호흡기 질병으로 번질 경우 선발 주자가 누리게 될 수익은 명백했다. 천 대표는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에 착수하기로 했다.
1월 27일,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체외 진단기 업체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불과 이틀 후인 29일, 코로나19 진단키트에 대한 1차 허가 접수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씨젠은 단기간 내 인력이나 생산 설비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존의 모든 제품 개발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켰다.
불확실한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기존 사업까지 중단하는 만큼 임직원들의 걱정이 컸다. 회사 자체의 존속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천 대표는 매일 아침 주요 임원들과 회의를 갖고 팀장들을 통해 경영진의 메시지를 전 직원에게 전달했다. 메시지의 골자는 “손해 봐도 괜찮다. 일단 하자”였다. “진단키트 제조사로서 진단 제품을 개발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씨젠의 경영 철학은 지속적으로 사내에 공유됐다.
그 결과 제품개발팀을 비롯한 모든 부서가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에만 몰두했다. 임직원들이 원자재 업체들의 생산시설 건물 청소까지 해주며 신경을 쓴 덕에 납품 일정을 앞당길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직원이 매달린 결과 이틀 내에 허가 신청에 성공할 수 있었다. 씨젠의 코로나19 진단키트는 2월 18일 국내 시장에 전격 출시됐다. 출시 직후부터 국내외에서 주문이 폭주했다. 이번에도 씨젠은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주문량을 맞출 수 있었다. 단순 포장 작업 등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은 부서와 직급을 막론하고 모두 함께 했다.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매일 늦은 밤까지 생산 작업이 이어졌다.
○ 속도·정확성·편리함 모두 잡았다
씨젠이 진단키트를 신속하게 개발해 내고 시장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2006년부터 분자 진단 기술, 한 우물만 파 왔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씨젠은 15년간 동시 다중 진단, 진단 자동화 등 분자 진단 기술력을 쌓았다.
씨젠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최대 강점으로는 동시 다중 진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진단의 정확성과 신속성이 꼽힌다. 동시 다중 진단 기술은 한 번에 여러 종류의 유전자를 검사하는 기술이다. 씨젠은 자체 원천 기술을 활용해 개발한 동시 다중 진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WHO의 지침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2종류의 유전자(E gene, RdRp gene)를 검사해야 한다. 씨젠의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별도의 유전자 1종(N gene)과 검사가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유전자 1종(Exo IC)을 추가로 검토한다. 결과의 정확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에도 대비가 가능하다는 게 씨젠 측 설명이다.
씨젠 코로나19 진단키트의 또 다른 강점은 자동화 프로세스다. 씨젠은 2018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분자 진단 시약 개발에 성공했다.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 과정에선 이러한 AI 시약 개발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100명의 전문가가 3개월 동안 할 작업을 3시간 만에 처리했다. 또한 핵산 추출부터 결과 판독까지 모든 검사 과정을 자동화해 의료진의 부담을 줄였다. 수작업보다 검사 효율은 10배 이상 높고, 수작업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는 방지할 수 있다.
이렇게 급성장에 성공했지만 씨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씨젠은 코로나19 진단키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올해 대규모 채용과 설비 확장을 진행했다.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관련 시장이 줄어들면 커진 몸집이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씨젠 측은 이에 대해 “코로나19를 계기로 씨젠의 장비와 플랫폼을 도입한 고객들이 호흡기 질환, 급성 설사, 인유두종 등 타 제품 라인으로 사용을 확대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