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주부 강모 씨(47)는 지난해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공모주 투자를 시작했다. 예·적금이 투자의 전부라고 여겼던 그의 생각은 이때부터 달라졌다.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 공모주에 청약해 단숨에 100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여유자금을 언제든 뺄 수 있도록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둔다. 또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 수시로 들어가 기업공개(IPO) 일정을 챙긴다. 강 씨는 “연초부터 증시가 달아오르는 걸 보니 공모주 대박도 계속될 것 같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국내 증시가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를 열면서 공모주 투자 열기가 올해도 계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뛴 뒤 상한가까지 상승) 행진을 이어간 공모주를 보며 투자자들의 학습효과가 생긴 데다 올해도 초대어(大魚)급 공모주가 줄줄이 출격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천피 증시에 대한 거품(과열) 우려가 커진 가운데 공모주도 무턱대고 투자에 나섰다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 ‘따상’ 맛본 개미들, 공모주 ‘열공’ 중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을 대상으로 한 상장기업의 일반청약 경쟁률은 평균 955 대 1이었다. 기관 대상의 수요예측 경쟁률도 871 대 1이었다. 모두 역대 최고치다.
작년 초만 해도 국내 IPO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얼어붙는 듯했다. 증시가 요동치면서 기업들이 제대로 가치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IPO를 앞두고 있던 기업 상당수가 실제로 상장 시기를 무기한 늦추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증시가 저점을 찍고 빠른 회복세를 보이자 상황은 급변했다. 6월 바이오기업 SK바이오팜 공모주 청약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개미들에게 공모주 투자 매력을 각인시켰다. 이어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이 연달아 역대 최대 청약증거금을 끌어 모으며 흥행에 성공하자 시장은 더욱 달아올랐다.
주요 기업들이 상장과 동시에 따상, 따상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오른 뒤 2거래일 연속 상한가) 기록을 쓰면서 개미들 사이에선 ‘공모주=보장된 수익’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기업공개를 준비하는 장외주식 공부 열기도 뜨겁다.
기업들도 IPO 시장이 전례 없는 활황을 보이자 자금 조달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지난해부터 증시로 자금이 몰리고 상장기업 대부분이 공모가 대비 우수한 수익을 거두면서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물이 들어올 때 노 젓듯 올해 상장을 계획한 회사가 많다”고 했다.
○ 조(兆) 단위 대어급 상장 줄이어
증권가는 올해도 IPO 시장 훈풍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투자자를 필두로 시중 유동성이 넘치는 데다 올해 상장을 계획한 기업 가운데 투자자 관심이 높은 기업가치 조(兆) 단위인 초대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올해 전체 IPO 규모가 역대 최대인 15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1∼6월) 상장이 예정된 게임회사 크래프톤은 최대어로 꼽힌다. 크래프톤은 온라인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해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글로벌 메이저 게임회사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 실적도 개선됐다. 2017년 266억 원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3593억 원으로 2년 새 13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게임 이용자가 크게 늘어 연간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상장 후 크래프톤의 몸값은 최대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크래프톤 주식은 최근 장외 주식시장에서 주당 160만 원 선에 거래되기도 했다.
금융 플랫폼 카카오페이,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 등 카카오 계열사들도 각각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카카오 플랫폼을 바탕으로 정보기술(IT) 기업 특유의 혁신성을 겸비해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높은 기업들이다.
백신 개발 및 바이오위탁생산(CMO)을 전문으로 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2차전지 기술기업 SKIET, 항체의약품 개발 전문기업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등도 올해 기업공개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공모주 대어인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에 버금가거나 웃도는 몸값이 기대되는 곳들이 많다.
여기에다 전기자동차 핵심 기술인 2차전지 시장에서 점유율 세계 1위를 다투는 LG에너지솔루션(LG화학에서 분사)이 하반기 상장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의 몸값을 최대 50조 원까지 보고 있다. 실제 상장이 이뤄지면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공모주 청약을 하려면 기업들의 실적 추이와 성장성을 점검하고 기관투자가들의 의무보유 물량 등 수급에 관한 사항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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