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원 권모 씨(30)는 근무 중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사무실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세를 확인하고 매도, 매수 주문을 하기 위해서다. 오전 9시 증시 개장 전에 오늘 살 종목을 추리기 위해 출근시간도 20분 앞당겼다. 장이 끝난 뒤면 10여 명의 직원끼리 “오늘은 얼마를 벌었다” “내일은 이 종목을 공략하라” 등의 대화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됐다. 권 씨는 “모든 생체 리듬이 주식 투자에 맞춰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코스피 3,000 시대를 연 지 하루 만에 3,100까지 뚫고 급등하자 연초부터 ‘개미’들의 투자 열기가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 30대 젊은 투자자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하고, 고수 투자자들은 “급등세가 무섭다”고 한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30년 넘게 증권 바닥에 있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 2030세대, 적금 펀드 헐어 증시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8일 3,152.18로 마감해 새해 첫 주에만 278.71포인트 뛰었다. 주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상승 폭이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대금도 61조2719억 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유동성 장세가 시작된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23조156억 원)의 2.6배를 웃돈다.
주부 김모 씨(35)는 코스피가 종가 기준 3,000에 안착한 7일 난생처음 주식계좌를 만들어 남편 몰래 숨겨둔 비상금으로 주식을 샀다. 김 씨는 “하루 만에 15%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보니 다들 이래서 주식하는구나 싶다”며 “주식 광풍은 비상금도 나오게 한다”고 했다.
입사 후 10년 넘게 은행 예·적금만 하던 회사원 김모 씨(38)도 최근 만기가 돌아온 적금을 찾아 삼성전자 주식 1000만 원어치를 샀다. 김 씨는 “6만 원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9만전자, 10만전자 얘기가 나오니 더 사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주식 투자 열풍을 이끄는 건 이들처럼 증시로 새로 진입하는 ‘뉴 머니’다. 증권업계는 지난해 주식시장에 뛰어든 2030세대를 약 300만 명으로 추산한다. 특히 과거 은행 예·적금이나 펀드처럼 간접 투자만 하던 중장년의 보수적 투자자들도 주식 투자에 대거 뛰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동안 가계(비영리단체 포함)의 장기저축성 예금은 14조3706억 원 급감한 반면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23조 원 이상 늘었다. 개인들이 예금을 헐어 상당 부분 주식에 투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펀드를 해지하고 직접 투자에 뛰어드는 투자자가 늘면서 자산운용사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41거래일 연속 코스피 주식 3조4000억 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특히 새해 들어 개미들은 ‘국민주’로 떠오른 삼성전자를 2조 원어치(2489만 주) 넘게 사들였다. 같은 기간 기관과 외국인이 순매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7%로 기관 지분(6.8%)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 빚투 행렬 계속… 나흘새 ‘마통’ 7000개 새로
회사원 박모 씨(44)는 며칠 전 처음으로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다. 지금은 여유자금으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지만 급등한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 마이너스통장에서 돈을 가져와 유망 종목들을 더 사들일 계획이다. 박 씨는 “요즘 주식 투자자 중에 마이너스통장 없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중단했던 신용대출을 새해 들어 재개하자 ‘빚투’(빚내서 투자) 개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7일 현재 134조1015억 원으로, 새해 영업을 시작한 지 나흘(4∼7일) 만에 4534억 원 증가했다.
하루에 새로 만들어진 마이너스통장도 지난해 말 1048개에서 7일 1960개로 빠르게 늘고 있다. 나흘간 신규 개설된 마이너스통장은 총 7411개에 이른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마이너스통장에서 돈을 빼낸 건수도 하루 평균 2000건으로 작년 말의 2배로 불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한 금액인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20조1223억 원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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