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내놓은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에 대해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하며 공급 확대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힌 것은 주택시장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며 부동산 규제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지만 1년 만에 정책 실패가 분명해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월 첫째 주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1년 전에 비해 평균 7.25% 올랐고, 같은 기간 전세가는 평균 7.71% 상승했다. 작년 7월 임대차 2법 시행을 계기로 집값뿐만 아니라 전세금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주거 여건이 크게 악화됐다.
주택 수요자들이 집을 사거나 빌리기 힘든 상황임에도 정작 뾰족한 공급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5·6공급대책과 8·4공급대책에 이어 11월에는 임대주택 확대 방안까지 내놨지만 집값과 전세금 오름세는 꺾이지 않았다. 당장 올해부터 서울 입주 물량이 급감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공급대책은 최소 2, 3년씩 걸리는 중장기 물량이 대부분이다. 그마나 향후 입주 물량은 수도권 외곽이나 소형 임대 위주여서 서울 도심의 중소형 분양을 원하는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문 대통령이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지적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책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이 구상하는 주택 공급방안은 도심 용적률 인상 등을 통한 신규 주택 공급과 기존 주택 매물을 유도하는 2가지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신규 주택 공급은 준주거지역 용적률을 상향하고 공공재건축에 용도지역 상향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소규모 재건축에 용적률 상향 조정 등 인센티브를 주는 법안도 최근 발의됐다. 국토부는 이 외에도 공공재개발, 재건축 시 민간에 좀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급을 대폭 늘릴 수 있는 민간 재건축 규제완화 방안은 현재까지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민간 신규주택 공급도 쉽지 않지만 다주택자가 보유한 기존 주택을 매물로 내놓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정치적으로 민감해 절충점을 찾기가 더 어렵다. 매물을 늘리려면 거래세인 양도소득세 중과 방침을 완화해주는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기존 주택을 다주택자가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강구할 수 있다”고 밝히자 양도세 중과 완화 방안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다주택자의 불로소득을 최소화하려는 정책 기조에 어긋난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양도세 경감) 관련 논의를 한 적도 전혀 없고 앞으로 논의할 계획도 전혀 없다”고 했다. 다른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사실상 현 정부 주택 정책의 근간인데, 이걸 흔들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양도세를 완화하지 않고 다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매물로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찾기 어렵다고 본다. 이 때문에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해 여당이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 세제 관련 카드를 내밀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고가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의 세 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등 투기 수요와 거리가 먼 정책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각에서는 주택을 오래 보유하다 팔면 양도세를 깎아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다주택자에게 일시적으로 적용하는 대안을 거론하기도 한다. 현재 투기과열지구 다주택자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지 못한다. 6월 1일 적용되는 양도세 중과 시점을 연말까지 미루는 방안도 가능한 선택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정해진 바가 없으며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 등 모든 방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