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투자자인 이모 씨(37)는 지난해 8월부터 다섯 달 가까이 집 밖에 나간 적이 거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자 않자 스스로를 105m²(약 32평) 규모 아파트에 격리했다.
직업적 특성이 반영된 생활이지만 불편함은 느낄 수 없다. 업무는 물론 운동, 요리, 취미생활 등을 위한 모든 소비를 온라인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가 현관문을 여는 것은 주문한 택배 물건이나 음식이 도착했을 때뿐이다.
코로나19는 이처럼 한국인의 소비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결과 오프라인 상점을 기반으로 대면 거래에 의존해왔던 소상공인들은 폐업에 몰리는 등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소비자로서의 개인이 바이러스에 대비하려 삶의 방식을 바꾼 반면 자영업자로서의 개인은 바뀐 소비패턴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생존의 기로에서 선 소상공인들은 ‘디지털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 재래시장, 온라인 상점으로 변신하다
다수 자영업자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진화에 성공한 사례도 축적되고 있다. 핵심은 ‘디지털로의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다.
경기 오산의 재래시장인 오산오색시장에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상인이 사라졌다. 그 대신 상인들은 시장 내 배송센터로 물건을 나르느라 바쁘다. 포털사이트의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배송에 나서면서 오산오색시장의 풍경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할 때에는 손님 발길이 뜸해질 때도 적지 않았지만 매출 타격은 덜했다.
상인들이 온라인 판매에 나선 만큼 상품도 온라인 판매에 적합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반찬가게 사장은 계란말이, 장조림 등 맵지 않은 메뉴로 구성한 ‘아가 세트’를 출시한다. 온라인 사이트에 판매 상품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포토샵 프로그램까지 배워 예쁘게 사진을 찍는 이들도 생겼다. 포장에 변화를 주는 것은 기본이다.
오산오색시장의 주문량은 최근 하루 320건, 상품 가짓수는 3000개가 훌쩍 넘을 때가 많다. 천정무 상인회장(61)은 “재래시장의 온라인화를 통해 임차료와 인건비 등 유지비를 온라인 판매를 통해 해결하는 상인이 늘었다”며 “무엇보다 상인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변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고 전했다.
전남 곡성에서 막걸리 스타트업 ‘시향가’를 운영하는 양숙희 대표(39·여)도 온라인 판로 개척을 통해 유망한 청년 양조인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초 창업 1년도 안 된 시점에 코로나19가 확산되자 하루에 한 병도 팔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그는 곡성 특산물인 토란과 친환경 쌀로만 만든 ‘토란 막걸리’의 경쟁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대형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판매에 돌입했다. 한식 주점 등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매출은 월평균 60% 가까이 늘었다. 양 대표는 “개인 소비자들을 통한 온라인 매출이 매달 일정하게 받쳐주면서 사업이 안정화됐다”고 했다.
○ ‘밀키트’로 위기를 기회로 삼은 식당 주인
일찌감치 상품 생산 방식 등에 변화를 줘 코로나19를 오히려 기회로 삼은 곳도 있다. ‘안동찜닭’을 밀키트로 제조해 판매하는 어썸푸드 권순환 대표(33)다. 경북 안동에서 찜닭 식당을 운영했던 그는 2017년 공장을 설립해 제조자개발생산(ODM) 형태로 냄비에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찜닭을 온라인으로 판매해왔다. 그리고 그간의 실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3월부터 마켓컬리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밥을 먹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권 대표의 월 매출도 4∼5배로 뛰었다. 그는 최근 본격적으로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법인을 설립했다.
무인(無人)으로 운영되는 동네 슈퍼도 나왔다. 서울 동작구의 1호점(형제슈퍼)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슈퍼’ 사업에 참여해 각종 정보기술(IT) 장비를 지원받아, 운영 4개월 만에 일평균 매출이 32.6% 증가했다. 형제슈퍼 점주 최제형 씨는 “무엇보다 쉴 시간이 늘면서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 소상공인 간 ‘협업 플랫폼’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시대에 소상공인들이 생존하기 위해선 “개인이 아닌 조직과 협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업 모델을 갖고 있는 소상공인들이 조직을 이루고 디지털 사업 모델을 개발해 ‘조직’을 통해 보급하는 방식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윤형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개별 소상공인 차원의 디지털화에는 한계가 있다”며 “조직화가 가능해지면 디지털 개발 및 보급 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소상공인 간 협업 플랫폼 비즈니스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업종별 ‘핀셋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주영 숭실대 중소벤처기업학과 교수는 “업종이 다양한 만큼 획일적인 지원은 효과가 없다. 업종별로 세분화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그 동네에서 대표적인 모범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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