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가 계속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힘들어진 취약계층이 빚으로 연명한 영향이 크다. 올해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금융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은행권 가계대출은 988조8000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00조5000억 원 증가했다. 200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2019년 연간 증가액(60조7000억 원)의 1.5배가 넘는다. 정부가 각종 대출 규제를 쏟아냈는데도 역대 최대 규모로 대출이 급증한 것이다.
가계대출 중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등 기타대출은 266조 원으로 사상 최대인 32조4000억 원 불었다. 주택담보대출은 721조9000억 원으로 1년 새 68조3000억 원 늘었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1년 동안 112조 원 늘어났다.
지난해 가계대출이 폭증한 건 집값 급등 여파로 ‘패닉 바잉(공황구매)’에 나선 이들이 빚을 많이 낸 데다 전셋값까지 뛰면서 전세자금대출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전국 주택 거래량은 180만 채로 2019년보다 23만 채 늘었다. 은행 전세자금대출도 33조 원 넘게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또 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빚투에 나선 이들도 많았다. 기타대출은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매달 3조 원 넘게 급증했는데, 증시가 빠르게 회복한 기간과 겹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생계가 어려워진 취약계층 대출도 늘고 있다. 윤옥자 한은 시장총괄팀 과장은 “지난해 주택 매매가 많이 늘었고 주식 매수 자금, 생활자금 등 다양한 자금 수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지난해 12월만 놓고 보면 가계대출은 6조6000억 원 늘었다.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기타대출은 4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달 증가 폭(7조4000억 원)에 비해 크게 꺾였다. 하지만 집값 상승세가 계속돼 주택담보대출은 6조3000억 원 늘어 12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증가 폭을 나타냈다. 지난해 12월 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은 “2021년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전년보다 축소되더라도 예년에 비해선 큰 수준인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이날 “올해 1분기(1∼3월) 중 상환 능력을 따져 대출심사를 하는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가계부채 선진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을 차주(빌리는 사람) 단위로 단계적으로 바꾸는 등 가계부채 연착륙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기업 부채가 도화선이 된 과거와 달리 가계부채 부실로 인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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