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할인 판매하는 ‘라스트오더’ 서비스로 지난해 95만 개의 식료품을 팔았다. 상품 폐기 비용을 줄이고 편의점 수익을 늘리면서 틈새소비 수요의 만족도를 높이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뒀다.
이 서비스는 롯데그룹 계열 벤처투자사인 롯데액셀러레이터와 스타트업 ‘미로’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변화와 혁신을 통한 성장을 모색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돼 출범한 회사다.
○ “과거 성공 경험 모두 버려라”
“이곳 압니까?”
2015년 8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당시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 이진성 롯데미래전략연구소 대표이사(현 롯데푸드 대표이사)에게 신동빈 회장은 태블릿PC를 건네며 물었다. 화면에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투자사 ‘와이콤비네이터’의 소개 자료가 떠 있었다. 신 회장은 이 대표에게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투자사”라고 설명하며 “우리가 이걸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자신 없어 하는 이 대표를 조곤조곤 설득했다.
“롯데는 오래된 대기업이잖아요. 스스로 변신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타트업들이 우리를 도울 겁니다. 또 투자 수익도 얻고 사회에 기여도 할 수 있어요. 100개 스타트업 중 하나만 잘 키워도 성공하는 겁니다.”
2011년 2월 롯데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신 회장은 과거에서 벗어나 변화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새해에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모아놓고 “과거의 성공 경험은 우리의 성장에 걸림돌”이라고 했다.
2016년 2월 출범한 롯데액셀러레이터는 ‘롯데를 망하게 할 사업을 찾습니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의 기존 사업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혁신적 비즈니스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롯데액셀러레이터 보육프로그램 ‘엘캠프’ 출신 119개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는 입주 당시 3029억 원에서 지난해 말 기준 9164억 원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신 회장이 말했던 것처럼 롯데그룹 혁신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스크 한 장도 즉시 배달해주는 롯데쇼핑 롯데온의 ‘한시간 배송’은 롯데액셀러레이터가 투자한 스타트업 나우픽이 상품 선별과 포장을 맡고, 물류 스타트업 피엘지가 배송을 맡는다. 롯데홈쇼핑 상품 배송에 쓰이는 친환경 포장재는 소재 스타트업 에임트가 만든다.
○ “살아남기 위해서 바꿔라”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계열사들이 사업 전략, 기업 문화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신 회장은 코로나19가 국내에 퍼진 직후인 지난해 3월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후 약 4개월에 걸쳐 거의 매주 사업 현장을 방문하며 디지털 전환과 기업 문화 개선을 주문했다.
지난해 6월 방문한 경기 안성의 롯데칠성음료 ‘스마트 팩토리’는 롯데그룹 사업의 중요한 축인 식품 제조의 미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롯데는 안성 공장에 약 1220억 원을 투자해 각 생산 라인별 투입, 적재 설비의 상태 및 생산량, 진도율 등의 데이터를 중앙 서버로 전송하고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기반의 예측 모델과 물류 자동화 시스템도 도입하고 이를 다른 공장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신 회장은 롯데에 남아 있는 구시대적 기업 문화도 바꾸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2년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조직 개편과 인사를 단행했지만 아직도 일부 회사에 권위적 문화가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신 회장 취임 직후인 2012년부터 시작한 ‘롯데 와우(Way Of Women·WOW) 포럼’은 여성 인재의 성장을 돕고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롯데그룹의 여성 간부사원 수는 신 회장 취임 직전인 2010년 3%에서 지난해 16%까지 늘어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