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거래량이 급격히 불어났다. 한국에선 ‘동학 개미’들이, 미국에선 ‘서학 개미’라고 불리는 ‘로빈 후드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면, 개인투자자는 수혜를 입기보단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호주 스윈번공대 연구팀은 전 세계 37개국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과 후의 주식 거래량 차이와 주식 거래량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경제적 요인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주식 거래량을 거래회전율로 측정했는데, 코로나19 이후 거래회전율은 63% 상승했다. 거래회전율은 일일 거래 주식 수를 일일 총 거래 가능 주식 수로 나눈 값으로, 거래회전율이 높을수록 주식 거래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2020년 1월 23일 이전 약 1년(코로나19 이전) 동안의 거래회전율은 0.27%, 2020년 1월 23일 이후 약 4개월(코로나19 이후) 동안의 거래회전율은 0.44%였다.
주식 거래량이 증가한 이유는 투자자 센티먼트(sentiment), 투자자 간 의견 불일치와 관련이 있다. 투자자 센티먼트는 투자자들의 직관과 감정이란 뜻인데,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미래 수익과 위험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정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뉴스가 보도되면 해당 기업의 주식 가격이 상승하곤 한다. 긍정적인 투자자 센티먼트가 반영된 결과이다.
투자자 센티먼트와 투자자 간 의견 불일치가 클수록 주식 거래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연일 보도되는 주가 폭등 및 폭락 소식에 투자자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특정 종목이나 시장에 대한 견해가 크게 엇갈려 주식 거래량이 늘어난 것이다.
팬데믹 시기에 주식 거래량이 많은 국가들의 문화적 특징도 발견됐다. 투자자 간 신뢰도가 높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일수록 주식 거래가 왕성했다. 또한 국민들이 불확실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을수록 주식 거래가 활발했다. 카지노가 흔한 국가의 주식 거래량이 많았는데, 코로나19로 카지노 방문 기회가 줄어들자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을 도박의 대체재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주식 거래가 왕성한 국가일수록 오히려 시장 수익률이 낮았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투자자가 거래 활성화의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행동경제학의 기존 연구들과 일맥상통한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인간 활동을 마비시키는 팬데믹은 투자자들의 센티먼트와 견해차를 확대시키는 최적의 매개체이다. 코로나19 이후 주식 거래량의 증가는 예견된 일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건 합리적인 투자 원칙이다. 그러나 팬데믹은 피해야 할 위험(danger)이지 관리해야 할 위험(risk)이 아니다. 특히 투자 경험이 적은 젊은층이 주식 시장에 급격히 뛰어드는 현상은 우려할 만하다. 팬데믹이 주식 대박의 기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주식 시장은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며, 팬데믹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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