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1915~2001) 막냇동생인 KCC 정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범현대가(現代家)의 ‘영(永)자 항렬’ 창업 세대 경영은 막을 내렸다.
KCC 측은 31일 “정 명예회장이 최근 건강 상태 악화로 병원에 입원했다. 30일 가족들이 모여 임종을 지켰다”고 밝혔다.
1936년 강원 통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큰형 정주영 명예회장과 말투와 행동 등이 비슷해 ‘리틀 정주영’으로도 불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식사를 하자마자 바로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한 생활 습관을 가졌다. 조금씩 기력이 쇠하면서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지난해 말까지 직접 회사에 출근해 직원들을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창업주로서는 드물게 60년 넘게 경영 일선을 지켜왔다.
22살 때인 1958년 8월 슬레이트를 제조하는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다. 오늘날 KCC의 뿌리다.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고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2005년 금강고려화학㈜ 사명을 ㈜KCC로 변경해 건자재에서 실리콘, 첨단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키워냈다.
고인은 ‘산업보국’이 기업의 본질임을 강조해 왔다. 건축, 산업자재 국산화를 위해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 유리, 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했다. KCC는 2018년 세계적인 실리콘, 석영, 세라믹 기업인 미국 모멘티브퍼포먼스머티리얼스를 약 30억 달러(3조4000억 원)에 인수해 실리콘 소재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스포츠팬들에게는 농구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기업인으로 꼽힌다. 1980~1990년대를 주름잡던 현대 농구단이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여파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구단을 인수했다. 어려움을 겪던 프로농구의 타이틀 스폰서를 다섯 차례나 맡으며 농구계 기를 살렸고 구단의 아낌없는 투자 속에 이상민, 추승균, 서장훈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KCC를 거쳤다.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으면서 모교인 용산고를 비롯해 동국대, 울산대에 사재 수백억 원을 쾌척하며 기숙사 건립을 지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주 여사와 정몽진 KCC회장,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건설 회장 등 3남이 있다. 일찌감치 승계 작업을 진행해 세 아들이 각자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낮다는 게 재계 관측이다.
현대가에서 가장 먼저 오전에 빈소를 찾은 정몽준 이사장은 “막냇삼촌이라 항상 활달했다. 어릴 때 장충동 집 앞 골목길에서 놀고 그랬는데 참 슬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오후에 빈소를 방문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정말 안타깝습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이외에 고인 조카인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 정몽규 HDC 회장,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박성욱 아산의료원장,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조문했다.
고인을 끝으로 한국 산업화와 함께했던 ‘영’자 항렬의 범현대가 1세대 경영인은 모두 퇴장했다. 1세대 6남 1녀 중 장남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2006년), 정희영 여사(2015년) 등도 세상을 떠났다. 최근 범현대가에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위시한 ‘몽(夢)’자 항렬 2세대를 넘어 정의선 회장 등 ‘선(宣)’자 항렬 3세대가 경영 전면에 나선 모습이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 등을 감안해 간소한 가족장을 치르고 3일 발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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