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인텔 드론 1200대가 하늘을 오륜기 무늬로 수놓았을 당시, 국내 드론 군집비행 기술은 겨우 20, 30대를 띄우는 수준이었다.
3년 만인 올해 1월 1일 창업 7년차 스타트업 유비파이는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상공에서 국내 기술로 직접 만든 드론 1000대로 자동차와 황소를 형상화하는 세계 정상급 드론쇼를 선보였다. 지난해 코로나 극복 및 한국판 뉴딜 플래시몹, 6·25전쟁 70주년 기념식 등 주요 행사마다 드론 공연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모두 ‘국내 1호 드론쇼 디자이너’ 옥홍재 씨(33·사진)의 작품이다. 옥 씨를 서울 관악구 유비파이 사무실에서 지난달 21일 만났다. 옥 씨는 드론쇼를 “밤하늘이란 도화지에 빛나는 점(라이트 드론)으로 채색한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드론 1000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때 신비한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드론쇼는 고도의 기술과 예술적 감성이 결합한 작품이다. 드론 날개가 일으키는 기류부터 초당 6m인 드론 속도, 기체 간 충돌을 막기 위한 안전거리(1.7∼2m) 제약까지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현장 변수나 작은 실수에 대당 수백만 원짜리 기체가 부딪혀 부서질 수도 있다.
옥 씨는 “반짝임 속도나 빈도, 색감, 그러데이션 등 예술적 측면과 드론의 모션, 입체감을 위한 기술적 이해가 필요해 늘 연구하듯 작업한다”고 말했다.
유비파이는 2015년 창업 후 3년간 레이싱 드론을 주로 만들었다. 그러다 평창 겨울올림픽 드론쇼를 계기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광고나 공연에 드론을 이용하는 드론쇼의 상용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옥 씨는 드론 전문가인 임현 유비파이 대표(36)에게 드론 군집비행 원리를 배운 뒤 유튜브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독학했다. 처음 6대로 시작된 운용 개체 수는 100대, 300대, 1000대로 늘었다.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의뢰로 한 달 만에 드론 수를 700대 더 늘렸을 때는 기존 프로그램이 다운되기도 했다. 드론 1대마다 XYZ축으로 모션, 색깔 등 입체 데이터가 쌓여 업데이트 때마다 400만 개 이상의 키프레임이 입력됐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연산을 못 따라가거나 기체 스펙 탓에 원하는 속도감이 안 나올 때는 임 대표가 기계 성능을 높여 옥 씨의 연출을 뒷받침했다.
애초 정보기술(IT) 문외한이던 옥 씨는 2014년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졸업전시회 작품을 구상하면서 처음 드론을 접했다. 창업을 준비하던 임 대표의 도움으로 시제품을 만들었고 홍익대 졸업전시회 사상 첫 드론 작품을 출품했다. 드론의 매력에 빠진 옥 씨는 졸업 후 임 대표 등 서울대 항공공학 박사 3명이 창업한 유비파이에 첫 직원으로 입사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드론쇼의 불모지였다. 작은 것 하나를 준비하는 데도 힘이 부쳤지만 현장의 탄성 한마디에 밤샘 피로가 한방에 사라졌다. 옥 씨의 드론쇼는 외신과 해외 누리꾼들에게 “불꽃놀이보다 아름답다” “놀랍다”란 찬사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경이롭다”고 썼다.
유비파이는 20억 달러(약 2조2368억 원) 규모인 세계 불꽃놀이 시장의 절반이 드론쇼로 대체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 현대차, NC다이노스 등의 행사를 홍보 드론쇼로 찍은 유튜브 동영상은 1000만 뷰를 넘기며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옥 씨는 “드론쇼는 불꽃놀이 대체품을 뛰어넘어 하늘의 광고판이 될 것”이라며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서 한류로 인정받는 것처럼 국내 드론쇼 기술력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