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공급대책’을 통해 서울에 공급되는 32만3000채는 경기 성남시의 분당신도시 3개를 합한 물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정부가 공급한다고 밝힌 83만6000채 자체는 역대 최대 규모여서 공급 불안심리를 해소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나온 물량 대부분은 실제 분양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상태여서 불확실성이 크다.
실제 4일 발표된 공급 방안은 큰 그림만 제시한 구상 단계로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구체적인 공급 대상지가 나오지 못했다. 사업 추진 여부의 결정권을 쥔 토지주나 민간조합,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협의가 필수지만 이를 거치지 않은 ‘예상 물량’일 뿐이다. 특히 이번 대책은 2025년까지 부지 확보가 목표여서 실제 공급까지는 최소 3, 4년이 더 걸린다.
○ 무늬만 공급 대책…분양 입주 시기 불투명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현재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엔 역부족이라고 본다. 정부가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물량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날 발표된 물량 중 전체의 절반이 넘는 44만2000채는 공공 시행 정비사업, 역세권·준공업지역·저층주거지 복합개발사업, 민간 소규모 재개발 등으로 공급되는 물량이다. 국토교통부는 해당 물량은 모두 2025년까지 부지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업계획 수립, 이주, 철거, 공사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지 확보 뒤 실제 입주까지는 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83만6000채를 공급하기 위한 부지 확보에 5년, 이 물량의 입주까지 3년이 더 걸린다는 의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민간 아파트 입주 물량은 작년 5만채에서 올해 2만8000채, 내년 2만 채 수준으로 급감한다. 이번 대책으로는 코앞에 닥친 입주 물량 급감을 해소하기 쉽지 않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것은 장기적인 공급 계획으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 “민간 참여 많이 할 것” 낙관론에 무리한 추정
정비사업이나 도심 복합개발에 따른 물량 자체도 추정치에 불과하다. 정부는 인센티브가 더 부여됐으니 참여율이 더 높아질 거라는 전제 아래 기존 유사 사업의 주민 참여율보다 더 높은 ‘기대 참여율’로 물량을 산출했다. 공공 시행 정비사업의 경우 공공재건축보다 호응이 더 좋았던 공공재개발 참여율을 근거로 기대 참여율을 적용하기도 했다. 정비사업을 벌이면서 멸실되는 물량도 감안하지 않았다. 실제 순증 물량은 더 줄어든다는 의미다. 국토부 측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물량을 산출했다”고 말했다.
44만2000채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 대부분은 신규 공공택지로 공급하겠다는 26만3000채다. 하지만 공급지가 정해진 물량은 세종시에 짓는 1만3000채가 전부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 관계기관 협의가 끝나야 물량이 모두 공급 가능한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재원 마련 방안 등 구체안이 없는 설익은 발표는 오히려 부동산정책 신뢰도만 낮춘다”고 지적했다.
○ 민간조합 “대책 신뢰할 수 있나” 회의적
정부가 산출해 낸 총물량이 실제 공급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난관이 적지 않다. 정부는 도심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소유주의 토지는 강제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개발에 반대하는 소유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역세권 개발의 경우 상가가 많은데, 상가 소유주와 임차인의 동의를 이끌어낼 만한 유인책도 뚜렷하지 않다. 상가 임차인에게 개발로 인한 휴업 기간에 생긴 영업 손실액을 4개월 치까지 보상해주고 임시영업 시설을 제공해 준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계속 장사하길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국토부는 이날 “주민 동의가 전제조건”이라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민간조합을 실제 접촉해 참여 의사를 확인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 도심에서 정부가 이날 발표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구역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공공재건축의 경우 주민 반대가 심해 컨설팅을 신청했다가도 철회하는 단지가 잇달아 나왔다.
서울 강남권 대규모 단지의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공공이 단독 시행을 한다는 건 조합을 해산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인데 어떤 조합이 환영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