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분산식 ‘이음’ 본격 상업운행… 우수한 가감속 성능… 제로백 45초
소비 전력량 20%↓ 수송 25%↑… 시속 320km 모델은 기존 KTX 대체
지난달 19일 오전 9시, 충북 청주시 오송역에 푸른빛의 새 열차 한 대가 도착했다. 무광 도색이었던 기존 고속열차 KTX와 달리 햇빛에 은은히 빛나는 유광 도색이 고려청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달 5일 중앙선(청량리∼안동)에서 상업 운행을 시작한 국내 최초 동력분산식(EMU·Electric Multiple Unit) 고속열차 ‘KTX-이음’이다. 현대로템 등이 100%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했다. KTX-이음의 시운전과 제작 현장을 살펴봤다.
탑승한 열차는 KTX-이음 510호기. 2016년 현대로템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수주한 19개 편성(1편성은 열차 1대) 중 10번째다. 현재 상업 운행 중인 건 5개 편성으로 연말까지 모두 납품될 예정이다. 기자는 납품 전 경부·호남고속선은 물론이고 경부·경전선을 주행하며 성능을 점검하는 시운전에 동행했다. 오송∼동대구는 최고 시속 230km, 동대구∼마산은 최고 시속 150km로 달렸다.
열차에 올랐을 때 처음 눈에 띈 건 맨 앞과 맨 끝 칸에 지하철처럼 운전실이 객실과 같은 칸에 있는 모습이었다. KTX와 KTX-산천, SRT 등 기존 고속열차는 열차 양 끝의 ‘동력 칸’이 전체 열차를 끌어주는 동력집중식인 반면 KTX-이음은 동력 발생이 모든 칸의 하부에 나뉘어 있는 동력분산식이다. 별도의 동력 칸을 둘 필요가 없어 효율적이다.
KTX-이음의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한 김성태 현대로템 책임매니저는 “KTX-이음은 KTX-산천보다 25% 승객 수송을 늘릴 수 있고, 승객 1명당 소비전력량을 20%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열차”라고 소개했다. 별도의 동력차가 필요 없으니 철도 승강장 규모 또한 동력집중식 열차보다 작게 만들어 철도사업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열차가 움직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우수한 가감속 성능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제로백은 KTX-산천보다 17초 짧은 45초다. 1편성당 8량일 경우 1만2220마력을 낸다. 10량 편성인 KTX-산천보다 430마력을 더 낼 수 있다. 빠른 가감속 때문에 역 사이 간격이 짧은 한국에서 주행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열차 내부는 17년간 KTX 상업 운행 노하우를 적용해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 여객기처럼 좌석마다 별도의 창문과 차양막(블라인드)을 갖췄고, 스마트폰 무선충전기와 220V 콘센트도 설치했다. 레그룸(다리 공간)은 앉아서 스트레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다.
이미 2010년 KTX-산천을 상용화하며 시속 250km 이상의 고속열차 보유국이 된 한국이 KTX-이음 개발에 나선 건 EMU 방식이 세계 고속열차의 75%를 차지하는 등 대세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미국, 중동, 동남아시아 등에서 고속철도 사업이 추진 중인 가운데 EMU 고속열차의 국내 상업 운행 경험을 쌓아야 일본(신칸센), 중국(CRH) 등 앞서 EMU 고속열차를 상용화한 국가와 경쟁할 수 있다.
KTX-이음은 경남 창원시 현대로템 공장에서 제작된다. 철도차량은 주문자마다 원하는 방식이 다 달라 사양도 천차만별이다. 창원공장에는 코레일 납품을 앞둔 시속 320km EMU 고속열차도 한창 제작 중이었다. KTX-이음과 같은 규격으로 개발된 8량 열차다. 내구연한 30년을 앞둔 KTX를 대체하고, 신규 고속철도 운행에 쓰일 예정이다.
현대로템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비롯한 해외 광역철도 차량도 EMU 방식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관련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염규철 현대로템 품질사업부장(상무)은 “과거 프랑스 알스톰에서 고속열차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웠던 한국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EMU 고속열차 독자기술 보유국이 됐다”며 “친환경과 경제성을 앞세워 세계 고속철도 시장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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