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미 기자의 K-푸드 트렌드①]
'신라면' 3가지 숨은 마케팅 전략, SNS 달구는 '짜파게티' 요리 신드롬…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된 코로나19 시대에 한국 식품, 이른바 ‘K-푸드’는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K-라면’으로 주가를 올리는 농심은 지난해 사상 최대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을 거둬 화제를 모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간편한 홈쿡’ 수요가 늘어난 데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인기몰이에 한몫을 했다.
최근 농심은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12.6% 늘어난 2조6398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도 1603억원을 거뒀다. 농심 관계자는 “2019년에 이어 매출 신기록을 경신했다. 영업이익도 최대치”라고 전했다. 해외 매출도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세계시장에서 두드러지는 활약상을 보이며 ‘식품 한류’를 이끄는 농심의 한국 라면 마케팅 전략과 인기 비결을 살펴보았다.
신라면, 한국의 ‘매운맛’ 그대로 차별화 꾀해
농심 라면의 인기는 단기간에 이뤄진 깜짝 결과는 아니다. 농심은 1971년 미국에 첫 라면 수출을 시작한 후 반세기 동안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려왔다. 1981년 일본 도쿄 사무소 설립, 198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설립에 이어 1996년에는 중국 상해에 법인을 세우고 생산 공장을 가동했다. 2005년에는 미국 LA 공장을 가동하면서 아시아권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해외사업 확대에 나섰다. 현재 미국, 중국, 일본, 동남아, 유럽 등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 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 출시 35주년을 맞는 국내 라면시장 1위 ‘신라면’은 해외에서도 대표주자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신라면은 월마트, 코스트코, 아마존, 알리바바 등 세계적인 유통 기업들이 선택한 손꼽히는 한국 식품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농심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구사하며 신라면의 브랜드 파워를 키워왔다.
첫째, 고품질의 프리미엄 제품 전략이다. 미국에서 저가 라면을 내놓지 않고, 고급화를 추구해 스파게티, 파스타 등과 대등한 위치로 자리매김했다. 신라면은 현재 미국과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자국 브랜드보다 품질이 좋은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둘째, 차별화 전략이다. 미국에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라면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농심의 ‘매운맛’을 소개했다. 따라하면 단기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농심 고유의 특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신라면을 그대로 수출했다. 처음에 낯설어하던 미국 소비자들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독특한 매운맛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셋째, 단계별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부터 공략해나갔다. 한국 라면의 수요가 큰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하고 생산공장도 가동하면서 경쟁력을 키웠다. 농심 관계자는 “2005년 LA공장을 가동하고 10여 년간 교포시장 및 서부를 중심으로 판매망을 넓혀왔다면, 지금은 동부 대도시를 비롯해 북부 알래스카, 태평양 하와이까지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미국 내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LA 제 2공장도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는 만큼 미국 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광고 마케팅은 철저하게 현지 문화와 트렌드 반영
중국에서의 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1996년 중국 진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은 끓은 물을 부어서 면을 익혀 먹는 ‘포면(抱面)’ 위주의 라면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심은 끓여먹는 ‘쭈면(煮面)’ 라면 중심으로 중국의 식문화까지 바꿔버렸다. 한국의 매운맛 또한 성공을 거뒀다. 농심 관계자는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이 중국인들이 신라면을 찾는 가장 큰 이유”라며, “신라면의 빨간색 포장과 ‘매울 신(辛)’ 디자인을 보며 중국인들이 종종 자국 제품이라고 여길 만큼 친근하게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농심의 글로벌 사업 성장 배경에는 제품과 마케팅의 ‘투 트랙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제품은 한국의 ‘매운맛’과 품질 그대로 차별화하고, 광고 마케팅은 철저하게 현지 문화와 트렌드를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 대표 마케팅으로는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 꼽힌다. 1999년에 출범한 바둑대회는 20년 넘게 이어온 한-중-일 국가 대항전으로 중국 대표 방송인 CCTV에서도 취재를 할 만큼 현지 관심이 뜨겁다. 미국에서는 최근 부상하는 ‘아트 마케팅’으로 접근했다. 2019년 세계적인 작가 에바 알머슨과 손잡고 미국 ‘신라면’ 광고를 제작해 인기를 끌었다. ‘맛있는 신라면의 문화’라는 제목의 영상은 에바 알머슨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제작됐다. 과거 농심의 히트 광고였던 ‘형님먼저 아우먼저’ 콘셉트를 남동생, 여동생으로 바꿔 서로 신라면을 양보하는 구성이다.
‘짜파구리’부터 SNS에서 ‘핫’한 ‘짜파게티’ 다양한 조리법
영화 ‘기생충’이 국내에 개봉했을 때부터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던 ‘짜파구리(짜파게티+ 너구리)’는 영화가 세계 각 나라에서 개봉할 때마다 현지 SNS를 뜨겁게 달구며 화제를 모았다. 짜파구리 열풍은 2020년 2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며 제대로 불붙기 시작했고, 농심은 이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시상식 다음날, 세계 11개 언어로 짜파구리 조리법을 소개하는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세계 주요 도시 상영관에서 짜파게티와 너구리 제품을 나눠주는 등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쳤다.
짜파구리는 지난 2009년, 농심이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 네티즌이 자신의 이색 레시피로 소개하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후 소비자가 취향대로 제품을 요리해먹는 모디슈머(Modify+Consumer)의 원조로 꼽히며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한편, 국내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게시물 수가 가장 많은 라면 브랜드는 ‘짜파게티’인 것으로 나타났다. 짜파게티의 해시태그 게시물 수는 22만1000개를 웃돈다. 특히, 지난해 새로 등록된 짜파게티 해시태그 게시물이 5만 개에 달한다. 농심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짜파게티를 자기 나름대로 조리해먹고 그 모습을 온라인에 공유하고 싶어 한다. 어떤 재료도 잘 어울리는 짜파게티의 인기가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고 연중 계속 이어졌다. 이는 짜파게티가 수십 년간 전 국민을 ‘요리사’로 등극시키며 즐거움을 선사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짜파게티는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등의 광고 콘셉트를 선보여왔다. 짜파게티가 출시되기 전인 1980년대 짜장면은 졸업식이나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 먹는 외식메뉴였다. 농심은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짜장면 개발에 나섰고, 오랜 연구 끝에 완성해낸 것이 바로 짜파게티다.
농심 연구진은 전국의 짜장면 맛집을 찾아다니며 최적의 맛을 찾았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면에 잘 비벼지는 수프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침내 국내 최초로 수프에‘그래뉼 공법’을 도입해 모래처럼 고운 가루 타입의 과립 수프를 짜파게티에 적용했다. 또한, 중국집 주방에서 화덕으로 볶은 간짜장 맛을 재현하기 위해 춘장과 양파를 볶아 수프를 만들고, 푸짐한 건더기와 맛을 부드럽게 끌어올리는 조미유를 더해 갓 만든 짜장면의 풍미를 구현했다.
제품 개발을 완료한 농심은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더해 ‘짜파게티’라는 제품명을 붙였다. 짜파게티는 출시 초기부터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독보적인 1등 짜장라면으로 자리매김했다. 짜파게티는 지난해 2190억원의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라면 시장에서 세 번째로 2000억원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농심, 세계 라면기업 순위 5위에 올라
미국 뉴욕타임스가 운영하는 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는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농심의 신라면 블랙을 선정했다. 뿐만 아니라 신라면 건면, 신라면사발 등 신라면 제품 2개와 ‘짜파구리’가 ‘베스트 11’에 들어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가 최근 발표한 라면 통계자료(2019∼2020 가공식품 - 인스턴트 누들)에 따르면 농심은 2019년 기준 세계 라면기업 순위 5위를 기록했다. 농심 관계자는 “전 세계 라면 격전지에서 농심 브랜드의 좋은 평가는 곧 한국 라면의 위상과도 연결된다”며 “경쟁 우위의 맛과 품질, 생산시스템을 자랑하는 농심의 해외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서 K-푸드의 인기를 지속적으로 높여가겠다” 고 말했다.
글/계수미 기자 soomee@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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