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11시경, 회사원 이모 씨(30)가 속한 온라인 단체대화방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관련된 영문 기사와 함께 간절한 발언이 속속 올라왔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모인 이 대화방의 관심은 ‘파월의 입’에 쏠렸다. 파월 의장이 밝힌 금리 정책 방향에 따라 국내외 증시 흐름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국채 금리 급등세에 증시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주식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파월 의장이 시장 달래기에 나섰지만 채권 금리 상승이 촉발한 불안 심리가 계속돼 24일 코스피가 2% 이상 급락하는 등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주저앉았다.
○ 천당과 지옥 오가는 투자자들
23일 오후 11시 30분, 미국 증시 개장에 맞춰 국내 일부 증권사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은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파월 의장의 발언을 보고 미국 주식을 사고팔려는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이다.
뉴욕 증시는 이날 장중 나스닥 지수가 4% 가까이 급락하고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보유한 테슬라가 13% 이상 폭락하는 등 요동쳤다. 국채 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글로벌 기업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양적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하락 폭은 빠르게 줄었다. 나스닥 지수는 0.5% 하락 마감했고 테슬라도 2%대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소셜미디어엔 “하룻밤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는 서학개미의 글이 줄을 이었다. 지난해 1983억 달러(약 220조 원)어치의 해외 주식을 거래한 데 이어 올 들어 두 달도 안 돼 758억 달러(22일 기준)를 거래한 서학개미들은 금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학개미가 간밤에 가슴을 쓸어내린 것과 달리 동학개미들은 ‘패닉’에 빠졌다. 24일 오전만 해도 상승세를 보이던 코스피가 75.11포인트(2.45%) 급락한 2994.98에 거래를 마친 것이다. 코스피는 지난달 29일 이후 16거래일 만에 3,000 선을 내줬다.
개인투자자는 5537억 원을 사들였지만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4329억 원, 1271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며 하락세를 주도했다. 동학개미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엔 “올해 벌어들인 수익이 제로가 되겠다”는 하소연이 잇따랐다. 이날 일본(―1.61%) 중국(―1.99%) 홍콩(―3.35%)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 여전한 금리 상승 불안감
파월 의장의 발언에도 국채 금리 급등에 대한 시장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 연 0.5%대까지 떨어졌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올 들어서만 40% 넘게 올라 연 1.3%대로 치솟았다.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추가 부양책, 원자재 가격 급등 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채 금리 상승은 경기 회복 기대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주식 시장엔 부담으로 작용한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안전자산인 채권과 위험자산인 주식의 기대 수익률 차이가 줄면서 주식 투자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증시가 추세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낮지만 당분간 변동성이 큰 모습을 보이며 조정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아직 금리 수준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장 예상보다 상승 속도가 빨라 투자자 불안감이 크다”며 “다만 연준의 긴축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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