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배터리, 반도체, 희토류, 의약품 공급망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라는 전면 검토 명령을 내리면서 한국 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100일간 검토 후 어떤 조치를 내리느냐에 따라 국내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기업은 이번 조치로 반사 이익을 기대하는 한편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 배터리 생산 능력 경쟁에서 뒤떨어진 상태다. 미국 현지에 테슬라용 배터리만 생산하는 일본 파나소닉과 더불어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공장만 건설돼 있다. 세계 1위인 중국의 CATL은 미국 진출을 못 한 상태다.
배터리는 수송 비용 등을 고려하면 주로 완성차 업체 인근에서 생산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CATL의 미국 진출을 사전에 막으면서 한국과 일본 기업에 미국 내 투자와 증설을 요구할 전망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로서는 성장이 확실한 미국과 동맹국 시장에서 중국 업체를 견제할 기회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업계도 바이든 정부 조치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나서고 있지만 생산 능력이나 개발 수준 모두 미국, 대만, 한국에 못 미쳐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의 중국 의존도는 높지 않다.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 TSMC처럼 한국기업의 미국 반도체 증설 압박이 더욱 강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이번 행정조치가 자국 공급망에서 중국을 빼는 것을 넘어 중국 기업에 동맹국의 부품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국 공급망에 들어오려면 중국 수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수도 있다. 이 경우 중국에 현지 생산라인을 갖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시장을 두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비중이 매출의 절반가량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세부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내놓을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한국에 결코 낙관적인 상황만은 아니다”면서 “앞으로도 중국을 견제하려는 품목이 늘어날 텐데 중국에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거나 중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좋지 않은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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