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본으로 창업한 ‘래디쉬’… 작년 매출 전년 대비 10배 성장
‘소설 1인 창작물’ 고정관념 대신 수십명 작가진이 공동참여 연재
‘B급 문학’ 취급을 받던 웹소설이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의 확장성을 인정받으며 ‘A급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1월 네이버가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인 왓패드를 인수하고, 카카오도 지난해 경쟁업체 래디쉬에 투자하는 등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업체인 왓패드와 달리 래디쉬는 2016년 한국인 청년이 창업하고 국내 벤처투자(VC) 자금으로 키운 한국계 스타트업이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미국 웹소설 시장에선 할리우드식 집단창작 시스템을 처음 이식해 ‘웹소설계 넷플릭스’로도 불린다. 지난해 매출 2000만 달러(약 230억 원), 월간 이용자 수 100만 명을 넘겼다. 지난해 7월 카카오페이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760억 원을 투자받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2일 서울 강남구 소프트뱅크벤처스 사무실에서 래디쉬 창업가 이승윤 씨(31)와 5년째 그를 밀어준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39)를 만나 성공 스토리를 들었다.
이승윤 씨는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후 크라우드 펀딩 형태의 유료 뉴스 플랫폼을 창업했다. 그의 눈에 영문 웹소설 시장이 들어왔다. 미개척된 ‘지식재산권(IP) 금맥’ 같았다. 10대들 사이에 인기 있는 왓패드가 있었지만 팬픽션(팬들이 쓰는 소설) 위주였다.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미엄 웹소설 시장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때마침 중국을 뒤덮은 웹소설 열풍을 보고 사업 전환을 결심했다. 이 씨는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문학”이라며 “소설계의 디즈니가 되면 영화, 드라마, 웹툰으로 무한 확장이 가능한 ‘넥스트 디즈니’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소설은 1인 창작물’이라는 출판업계 고정관념부터 뒤집었다. 줄거리 담당, 집필자, 편집자 등 세분된 수십 명의 작가진이 작품당 매일 3∼5회씩 에피소드를 연재하며 독자의 기다림을 없앴다. 이 씨는 “미국의 소프오페라(TV연속극)처럼 독자 반응에 빠르게 반응하는 연재성 콘텐츠는 작가 1명이 아닌 스튜디오가 만들어야 했다. 중간에 교체되거나 새로 들어온 작가들을 위해 등장인물과 플롯 등을 정리한 ‘바이블’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게임사나 온라인동영상(OTT) 업체들처럼 잔존율(다음 회로 넘어가는 비율), 클릭률 등 이용자 데이터를 참고해 될성부른 IP를 빠르게 양산한다. 이 씨는 “넷플릭스처럼 플랫폼을 가진 스튜디오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경쟁 플랫폼인 왓패드는 10대 작가가 많은 탓에 방학, 슬럼프에 연재가 중단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 IP들을 전문화된 제작시스템으로 재집필해 멀티히트에 성공하기도 했다. 판타지 로맨스 ‘톤 비트윈 알파’와 ‘억만장자의 대리모’는 각각 누적 조회수 1억 뷰, 매출 50억 원을 넘겼다.
2016년 래디쉬는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첫 콘텐츠 펀드 제안서에 투자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펀드를 주도한 이준표 대표는 “당시 유튜브와 부분 유료결제 확산으로 콘텐츠 주도권이 투자·배급사에서 창작자로 옮겨가는 상황에 주목했다. 투자자 사이에서 한국인 창업가가 해외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겠냐는 의심도 나왔지만 카카오 출신의 좋은 팀, 할리우드 인사들까지 끌어들인 래디쉬가 펀드 취지에 가장 잘 맞는 회사였다”고 회상했다.
개발자도, 창작자도 아닌 이 씨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 한미 전문가 드림팀을 구성한 것도 투자 성공 요인이었다.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링크트인에서 만난 수 존슨 전 ABC 부사장을 최고콘텐트책임자(CCO)로, 투자자 소개로 만난 이두행 전 카카오페이지 서비스 총괄을 오랜 설득 끝에 최고제품책임자(CPO)로 영입한 것. 이 대표는 “래디쉬는 한국의 좋은 창업팀이 미국에 진출해 어느 정도 인정받은 다음 사업을 잘 키울 수 있는 현지 인력을 많이 채용한 글로벌 창업의 모범 사례”라며 “래디쉬 IP와 음성 인공지능을 결합한 오디오 드라마 등 래디쉬만 할 수 있는 신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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