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세계에서 테슬라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판매한 폭스바겐이 그동안 사용하던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각형 배터리로 전환해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결정했다. 지금까지 폭스바겐에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하던 국내 배터리사의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폭스바겐은 15일(현지시간) ‘파워데이’를 열고 2023년부터 각형의 통합 배터리셀(Unified cell)을 만들어 2030년까지 자사의 전체 전기차 중 80%에 공급하는 내용의 전기차 배터리 전략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이전보다 배터리 제조 비용을 50%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독일 잘츠기터에 스웨덴 배터리 업체인 노스볼트와 함께 2023년 양산을 목표로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폭스바겐은 해당 공장을 포함해 유럽에만 총 6개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연간 240기가와트(GWh)의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격·규모뿐만 아니라 성능도 확보한다. 우선 배터리 내 코발트 함량을 줄여 무게를 줄인다. 또 급속충전 기술을 도입해 2025년 이후에는 12분 만에 충전을 끝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재사용 시스템도 추진하며, 미국·유럽·중국에는 배터리 충전 인프라를 구축한다.
폭스바겐이 기존의 파우치형 대신 각형 배터리를 선택한 건 현재 배터리 생산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노스볼트가 각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각형 배터리 전기차가 다수인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날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중국에 1만7000개의 급속충전소를 설치해 중국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배터리 시장에서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폭스바겐이 대주주인 노스볼트와 중국의 궈시안의 배터리 시장점유율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이들 업체는 모두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각형 배터리가 주력인 중국의 CATL도 유력한 파트너로 거론된다.
국내에선 삼성SDI가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지만, 수주는 폭스바겐과 지분 관계가 있는 업체에게 우선권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의 경우 ‘자국 배터리를 쓰라’는 중국 정부의 압박도 있다. 업계는 폭스바겐의 유럽 생산 물량은 노스볼트, 중국 생산 물량은 궈시안·CATL의 배터리가 사용될 것이 유력하다고 본다.
폭스바겐의 이번 결정은 국내 배터리 기업에게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에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했는데, 현재 계약된 물량을 소화하고 나면 앞으로 폭스바겐으로부터 수주를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재 파우치형 배터리만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의 타격이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이 주력이긴 하지만 일부 물량은 원통형으로 생산해 테슬라에 납품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라인을 조정해 다른 전기차 업체에 납품할 배터리를 생산할 수도 있지만, 배터리 형태가 다르면 생산 공정도 다르기에 당장 쉽게 조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폭스바겐이 80%의 전기차에 대해 각형 배터리를 쓰겠다고 밝힌 만큼, 품질과 가격 여부에 따라 나머지 20% 물량에 대해 국내 배터리 기업이 수주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파우치 배터리의 강점을 살려 기존 고객사에 대한 수주를 이어가고, 원통형 배터리를 쓰는 루시드 등 미국의 스타트업 고객사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번 폭스바겐의 선택에 대해 지나친 우려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내재화에 오랫동안 투자한 테슬라조차 배터리 업체들과 협력이 강화되고 있고, 노스볼트·궈시안 등의 상업화 속도도 빠르지 않다”며 “폭스바겐이 내재화 노력을 지속하더라도 그 비중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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