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음식 작년 25.4% 더 팔려
월요일 31.8%↑… 젊은층 주소비층
스트레스 증가에 따른 영향으로 추정
백화점도 ‘매운맛 전문점’ 유치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에 입점한 매운 음식 전문 스타트업 ‘맵데이’ 매장 모습. 백화점에 매운맛 전문점이 생기고, 매운맛 아이스크림이 출시될 만큼 유통가에는 매운맛 열풍이 거세다. 현대백화점그룹 제공
‘매운맛’과 ‘아이스크림’.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조합이 요즘 유통가의 대세다. 롯데제과의 ‘찰떡아이스 매운 치즈떡볶이’는 혀가 따가워질 정도의 청양고추 향을 아이스크림에 입혔다. 빙그레에서도 이달 말 ‘멘붕어싸만코’라는 매운 아이스크림이 나온다. 불닭 소스가 얼얼한 매운맛을 낸다. 빙그레 측은 “과거에도 비슷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현실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최근 매운맛 열풍에 힘입어 시도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인의 ‘매운 음식 사랑’이 커지고 있다. 매운맛 아이스크림까지 출시될 정도로 식음료 업계에서 ‘더 맵게’는 뚜렷한 트렌드가 됐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편의점 GS25에서 판매한 매콤, 매운, 맵, 불닭 등 매운맛 키워드가 들어가는 상품의 매출은 2019년보다 25.4% 높았다. 매운맛 제품의 매출이 가장 높았던 요일은 주말 이후 스트레스를 받기 가장 쉬운 월요일(31.8%)이었다. 10∼30대 젊은 층의 비중이 78.8%로 높았지만 모든 연령층과 성별에서 고른 신장세를 보였다.
매운맛이 특정 세대나 성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서 고루 인기를 끈 건 ‘코로나 블루’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어느 때보다 높은 한 해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배달 음식 수요가 크게 늘면서 입맛이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점도 이런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배달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17조3828억 원으로 전년(9조7328억 원)보다 78.6%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보였다. 음식 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매운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경험이 늘면서 전 연령대에서 매운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더 매운 맛’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가공식품도 맵기를 세분화하고 있다. 대상은 ‘청정원 순창 100% 태양초고추장’을 ‘불타는 매운’, ‘매운’, ‘찰고추장’, ‘덜 매운’ 등 매운 정도에 따라 4가지로 생산하는데 지난해 가장 매운 단계가 제일 많이 팔렸다. 풀무원식품도 최근 간편식 떡볶이 제품을 매운맛에 따라 1∼4단계로 개편했다. 1단계는 아이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이지만, 4단계는 매운맛 마니아에게 어울리는 강한 매운맛을 낸다.
매운맛 열풍에 향이 강한 음식을 꺼리는 백화점에서 ‘매운맛 전문점’을 유치하기도 한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6일 오픈한 더현대서울 지하 1층에 스타트업 ‘맵데이’를 입점시켰다. 스낵랩, 닭발, 불닭짜장라면 등 다양한 조리음식을 판매한다. 맵데이 관계자는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 풀려 하는 젊은 세대들의 재방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MZ세대 사이에서 매운맛 즐기기는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맵부심’(매운맛+자부심) ‘혈중 마라(맵다는 뜻의 중국어) 농도’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오비맥주는 지난달 대학내일과 함께 “스코빌지수(매운맛지수)가 가장 높은 제품은?” 등의 질문으로 ‘맵부심’ 강자를 가리는 ‘매운대학’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3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매운맛 열풍은 단순히 맛에 대한 선호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 현상이자 문화”라며 “앞으로 이 같은 트렌드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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