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빈집-무허가 건물도 공시가 표준주택… 현장조사 안 한듯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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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 급등 후폭풍]제주 공시가 기준 ‘엉터리’

1976년에 지어진 제주의 한 단독주택. 창문이 깨져 있고 벽에도 금이 갔다. 수년째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로 귀신이 나올 법한 집이다. 주택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는데도 올해 ‘표준 단독주택’으로 선정됐다. 표준 단독주택의 공시가는 인근 단독주택 공시가의 기준이 된다. 실제 이 주택의 공시가(연면적 102.61m²·5660만 원)를 기준으로 인근 단독주택 53채의 공시가가 산정됐다.

16일 제주도 공시가격검증센터가 공개한 제주의 표준 단독주택 현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폐가처럼 집값의 표준으로 삼을 수 없는 집을 표준 단독주택으로 선정하거나 표준 단독주택의 공시가 자체가 잘못 산정된 경우가 총 47채로 집계됐다. 이를 근거로 공시가가 책정된 단독주택은 1134채에 이른다. 지난해 제주 단독주택 시세가 떨어졌는데도 공시가가 오른 것도 공시가 기준값인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훈령상에 규정된 ‘표준주택 선정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개·보수, 파손 등으로 지속적으로 살피며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 단독주택은 표준주택에서 반드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인근 주택 가격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허가 건물까지 표준주택에 포함된 경우도 있었다. 서귀포시의 한 단독주택은 주택 연면적 내에 무허가 건물이 있었는데 이 건물까지 표준주택 면적에 포함돼 공시가가 산정됐다. 지침에 따르면 정상적인 건물로 볼 수 없는 무허가 건물은 표준주택으로 선정해서는 안 된다. 주택 연면적이 실제와 맞지 않게 집계되는 등 기초적인 실수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에 오류가 빚어지는 것은 현장 조사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센터에 따르면 제주의 표준 단독주택 4451채 가격을 산정하는 사람은 한국부동산원 제주지사 직원 7명에 그친다. 소수의 직원이 다수의 주택을 보기 때문에 일일이 현장 조사를 다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부동산원이 정한 비준표에 따라 면적,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표준주택의 가격에 가감하는 방식으로 인근의 다른 단독주택 가격을 정한다. 표준주택 공시가의 오류가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다.

이런 현상은 토지와 건물을 합한 단독주택 공시가격보다 토지만 따로 본 공시지가의 가격이 더 비싼 역전 현상이 나타난 주택에서 많이 발견됐다. 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들이 직접 산정하고, 주택은 부동산원 직원이 산정한다. 그런데 토지와 주택(토지+건물)의 가격이 크게 차이 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국토부는 “주택 공시가의 일부만 공시가로 책정되도록 공시비율(80%)을 적용해 발생한 일”이라며 “2020년 공시가부터 공시비율 적용을 폐지해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수연 제주 공시가격검증센터장(한국감정평가학회장)은 “전체 표준주택 중 일부만을 조사했을 뿐인데도 10% 이상에서 문제가 나타났다”며 “올해부터 산정 기초자료를 공개했지만 부동산원이 책정한 시세는 얼마인지, 고려 요소는 무엇인지 명확히 제시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폐가#빈집#무허가#공시가#현장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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