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 화장품-식품 해외 유통하는 업체
정온 박스 중요함 깨닫고 연구해 핵심 진공단열재-냉매 자체 생산
콜드체인 스타트업 에스랩아시아의 이수아 대표가 국산 식품의 동남아 신선배송을 돕는 ‘그리니박스’ 뒤에서 미소 짓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백신을 유통하는 콜드체인(저온유통) 박스도 국민 생명과 직결된 ‘전략 물자’로 주목받고 있다. 백신은 1, 2도의 온도 변화에도 변질될 수 있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정온 박스의 중요성이 커졌다.
국내 스타트업 에스랩아시아가 자체 연구개발한 의약품 운송박스 ‘그리니메디’는 질병관리청이 총괄하는 국내 코로나19 백신 유통체계에서 최종 종착지인 각 의료기관에 전달하는 ‘라스트마일’ 운송을 맡고 있다. 16일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타워 사무실에서 만난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35)는 “2014년 창업 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달에 1만2000개 수준인 생산 능력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니메디는 아스트라제네카(2∼8도) 및 화이자 백신(영하 60도 이하) 전용 박스로 개발됐다. 별도 전력장치 없이 내부 온도를 최대 120시간까지 유지할 수 있는데, 국내용으로는 72시간 박스가 쓰이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고객사가 테스트용으로 72시간짜리 그리니메디에 백신을 넣어 갔다가 깜박 잊고 5일 뒤에 열었는데 온도가 그대로 유지됐다며 놀라워했다”며 “미국 유럽산 박스 성능에 못지않다”고 자신했다. 박스 핵심 소재인 진공단열재와 냉매 등을 생산하는 자체 연구소 그리니랩은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국제안전수송협회(ISTA) 인증을 취득했다. 콜드체인 패키징 개발 및 성능 측정실험 인증(ISTA 7D)과 외부 온도 변화가 배송 패키징 내부 제품에 미치는 영향 측정실험 인증(ISTA 7E)을 모두 획득했다.
국산 백신 운송박스의 진가는 콜드체인 불모지인 동남아 국가들이 먼저 알아보고 있다. 이 대표는 “동남아는 냉동·냉장 창고나 정온 유지 트럭 등 인프라가 부족해 120시간 지속되는 운송박스를 냉장고처럼 쓰려고 한다”면서 “이달 중 수출 예정인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태국, 인도네시아 등 국가에서도 공급 문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에스랩아시아는 원래 화장품이나 식품 등 국산 제품을 동남아에 공급하는 물류업체였다. 하지만 정온 창고 및 트럭 부족으로 마스크팩 안의 에센스가 마르고, 고온에 녹은 냉동식품을 다시 얼려 유통하는 상황을 보고 정온 박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개발 초기에는 이 대표가 의류 수출 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중국 협력업체들에 발품을 팔며 직접 원단과 소재를 발굴했다. 식품용으로 개발된 3세대 그리니박스가 탄생하기까지 400번 이상의 샘플 실험을 거쳤다. 그리니랩은 2019년 개소 당시 연구원이 2명에 불과했지만 화학 및 소재 전문가들을 꾸준히 영입해 현재 7명으로 늘었다. 전체 직원(20여 명)의 약 30%가 연구개발 인력인 셈이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라스트마일 운송을 책임지는 ‘그리니메디’. 에스랩아시아 제공
주 종목인 신선식품 콜드체인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해외 운송 과정에서 쉽게 상하는 딸기를 그리니박스로 운송해 폐기량을 크게 줄인 것. 이 대표는 “국산 딸기는 숙성 기간을 고려해 덜 익은 상태로 배송돼 싱가포르 등에선 미국 스페인 일본 제품보다 인기가 없다”면서 “올해 그리니박스를 도입해 폐기율을 40%에서 15%로 낮추고 당도를 유지해 현지 마켓에서 높은 값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에스랩아시아는 연내 제품별 최적 운송 온도와 수량을 측정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운송박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데이터로 기록해 콜드체인 기술을 고도화할 것”이라며 “백신 안전에 대한 우려를 줄이고 국산 과일과 수산물 등이 해외에서 제값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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