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의 한 노후 아파트(전용면적 51㎡)에 사는 40대 김모 씨는 얼마 전 올해 공시가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지난해 2억7000만 원에서 1년 새 4억1000만 원으로 훌쩍 뛴 것이다. 김 씨는 “정부가 재산세를 깎아줘서 당장은 세금이 안 오르겠지만 이런 속도면 앞으로 세금이 얼마나 늘어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했다.
올해 전국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작년보다 19% 급등하면서 중저가 아파트를 가진 집주인들도 세금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공시가 6억 원 이하 주택은 재산세를 감면해주기 때문에 공동주택의 92%는 세금이 줄어든다”고 강조하지만 대부분 ‘반짝 감면’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까지 공시가에 대한 시세 반영률을 90%까지 끌어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 효과가 재산세 감면(1주택자 대상) 효과보다 훨씬 커서 중저가 아파트도 수년 내 세금이 빠르게 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23일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에 의뢰해 공시가 1억~5억 원대 서울 아파트 5곳의 향후 10년간 재산세를 추산했다. 그 결과 공시가 1억 원대 아파트를 제외한 4곳은 2022년이나 2023년부터 지난해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를 추산할 때 각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12월 KB부동산 시세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했다. 또 정부가 공개한 9억 원 미만 공동주택의 연도별 시세 반영률을 적용했다. 올해부터 공시가 6억 원 이하 주택에 적용되는 재산세율 0.05%포인트 인하 혜택도 계속 유지된다고 봤다.
올해 공시가격이 3억5700만 원인 강서구 등촌주공 2단지(전용 41.85㎡)의 재산세는 31만9264원으로 작년보다 약 4만 원 줄어든다. 정부의 재산세 감면 덕분이다. 하지만 2023년 재산세는 38만6309원으로 오르고, 2030년에는 작년의 약 2배인 70만7094원으로 뛴다. 집값이 그대로여도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존보다 0.05%포인트 낮은 재산세율을 적용해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세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은퇴한 연금생활자 등 소득이 없는 집주인이라면 늘어난 세금이 부담될 수준이다.
현재 공시가격 6억 원에 가까운 집일수록 향후 세금 부담이 급증했다. 정부가 공시가격를 산정할 때 시세 반영률을 높이면서 수년 내 이들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6억 원을 넘기 때문이다. 성동구 왕십리풍림아이원 아파트(공시가 5억7100만 원)는 당장 내년부터 공시가 6억 원이 넘어 재산세 감면을 못 받는다. 이로 인해 내년 재산세는 작년보다 12만5000원 오른 88만4488원이 된다. 2030년에는 229만 원으로 작년의 3배로 오른다. 공시가가 4억8600만 원인 성북구 한진아파트도 2025년부터 6억 원을 초과해 2030년 재산세(194만 원)가 작년의 약 3배로 뛴다.
전문가들은 들쑥날쑥한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형평성에 맞게 조정한다는 정부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고 지적한다. 우 팀장은 “30년 가까이 누적된 공시가격과 시세의 괴리 문제를 급격히 바꾸면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재산세 감면으로 당분간 세금이 줄어든다”며 “집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재산세를 추산하는 건 근거가 불분명한 추측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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