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한 비판이 일자 한 직원이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정직하게 일하고 저축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집값 폭등과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어버리다시피 한 젊은이들을 다시 한번 울린다. 제 잇속에 눈먼 몰염치에 부아가 치밀고 억장이 무너진다.
억장(億丈)은 ‘억장지성(億丈之城)’이 줄어든 말이다. 중국 진시황이 지은 철옹성으로 알려진다. 1장(丈)은 10자(尺)로 약 3m이니, 억장은 3억 m다.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라고는 하나, 그런 억장이 무너지는 건, 높은 성이 무너질 때처럼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노엽거나 분할 때 사람들은 ‘부아가 나다(끓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이때의 ‘부아’는 뭘까. 우리 몸에는 오장육부가 있는데 이 중 하나인 폐장(허파)을 다른 말로 ‘부아’라고 한다. 근데 의외로 ‘오장육보’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흥부전’에서 문학적 표현으로 ‘심술보’와 말꼴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오장육보로 쓴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 때문인 듯하다. ‘화가 나다’ ‘화가 치밀다’ 따위의 ‘화(火)’를 떠올려 ‘부화’로 잘못 아는 이도 있다.
신뢰를 잃어버린 부동산 정책 때문인지 요즘 들어 부동산 관련 신조어가 부쩍 눈에 띈다. 한데 하나같이 부정적이면서도 날 선 느낌이다. 영어 숭배 현상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벼락거지’, ‘패닉바잉’,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가 대표적이다. 이 중 벼락거지는 벼락부자의 상대 개념으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집값 폭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무주택자나 전세난으로 갑자기 월세 난민으로 전락한 사람 등을 일컫는다. 그야말로 수십 차례에 걸친 부동산 정책 발표에도 오르기만 한 집값이 낳은 씁쓸한 신조어인 셈이다.
패닉바잉은 가격 상승 등에 대한 불안으로 주식과 부동산 등을 마구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이 이를 ‘공황구매’라는 낱말로 다듬었지만, 신문 등에서는 ‘패닉바잉(공황구매)’으로 병기(倂記)하고 있다. 공황구매가 영 어색하고 낯설다면 ‘당황구매’ ‘공포구매’ 등으로 적절하게 쓰면 되지, 굳이 어려운 외국어를 고집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야외 카페 등이 있는 건물 옥상을 ‘루프톱’이라고 하는데,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지금부터라도 ‘루프톱 카페’ 대신 ‘옥상 카페’를 입에 올려 보자. 알기 쉽고 말맛도 좋다. 사전에 오른 외래어 ‘모델 하우스’를 제치고 입말로 자리 잡은 ‘본보기집’이 좋은 예다.
정부는 이제라도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으로 젊은이들에게 내 집 장만의 희망과 보람을 줘야 한다. 그래야만 벼락거지나 영끌 같은 불편한 낱말이 유행어로 잠시 머물다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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