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재임 843일, 윤증현 전 장관 제쳐
코로나19 위기에 맞서 경제 방역 키 쥐어
경제 성장률·명목 GDP 규모 등 지표 선방
소신 굽혀 재정 건전성 훼손된 점 아쉬워
남은 과제는 떨어진 기재부 위상 회복하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다음 달 1일이면 최장수 기재부 장관에 등극한다. 다사다난했지만, 가장 큰 공은 코로나19발 경제 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해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다수의 회원국 중 한국이 2020년 경제 성장률 1위를 차지할 것”(같은 해 12월 OECD 경제 전망)이라고 전망하는 등 국제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지난 한 해 동안에만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네차례 편성, 재정 건전성을 급속히 악화시킨 점은 과로 꼽힌다. 여러 정책을 밀어붙이는 여당에 번번이 소신을 굽히며 ‘예스맨’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31일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2월11일 취임한 홍남기 부총리는 오는 4월1일 재임 843일을 맞는다. 기존 최장수 기록을 갖고 있던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842일)을 제치게 되는 것이다. 기재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2월 출범했고, 당시 기재부 장관은 부총리를 겸임하지 않았다. 따라서 최장기 재임 기록도 기재부 장관을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
홍 부총리가 최장수 기록을 갖게 된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전쟁 중에 장수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주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역이 곧 경제”라는 지시에 대통령 주재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지난해 4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경제 중대본)로 전환, 이달 31일까지 총 32차례에 걸쳐 직접 주재해왔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각종 경제 지표는 비교적 양호한 모습이다. 경제 성장률이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1.0%(잠정치)다. 아시아에 외환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1998년(-5.1%) 이후 22년 만의 역성장이지만, 세계 GDP 성장률 전망치(-4%대)에 비하면 선방했다.
‘경제 규모’를 가늠하는 명목 GDP 기준으로는 지난해 세계 9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 9위는 사상 처음이다.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도 밝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GDP 성장률이 3.6%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월 전망치(3.1%) 대비 0.5%포인트(p) 상향한 것으로, 정부 전망치(3.2%)는 물론 OECD(3.3%)보다도 낙관적이다.
여러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신을 지키지 못한 점은 아쉽다는 평가다. 우선 지난해 5~8월 지급됐던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두고 재정 건전성 훼손을 이유로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정치권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후 재난지원금이 세 차례나 더 지급되는 동안 비슷한 상황은 계속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나랏빚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기재부가 지난해 9월 내놓은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올해 945조원이 되는 국가 채무액은 내년에 1000조원(1070조3000억원·국채 비율 50.9%)을 돌파한 뒤 2023년 1196조3000억원(54.6%), 2024년 1327조원(58.3%)까지 증가한다. 25일 국회를 통과한 추경이 빠진 지표다.
홍 부총리는 ‘주식 양도 차익 과세 대상 대주주 요건’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 기준을 현행(10억원)대로 유지하자는 정치권에 반발하며 “3억원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목소리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 부총리는 “책임을 지겠다”고 사표를 던졌으나 문 대통령의 반려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게 됐다.
남은 과제는 홍 부총리가 제 목소리를 낮추는 동안 떨어진 기재부의 위상을 회복하는 일이다. 기재부가 예전 같지 않다는 분위기는 초임 사무관의 부처 선택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올해 부처에 배치된 제65회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 상위 5명 중 1명만 기재부행을 택했다. 연수원 성적까지 합한 최종 수석 합격자는 국세청에 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홍남기 부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도, 코로나19발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몇 년 새 정치권 입김이 강해지면서 기재부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 행정고시 합격자의 기재부 기피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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