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의 마켓뷰]CBDC가 바꿀 금융 환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6일 03시 00분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현금 없는 사회’를 앞당겼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 영향이다.

현금 없는 사회에 대비해 민간 기업이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들은 자체 사이버머니를 발행하고 결제나 송금 기능을 제공해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했다. 다만 이러한 사이버머니는 가치가 원화 등 법정통화에 고정돼 있어 기존 화폐를 보완하는 개념이 컸다.

2019년 미국 페이스북의 자체 가상화폐 ‘리브라’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민간 화폐와 법정통화는 경쟁 관계로 바뀌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리브라는 정부나 중앙은행 통제 없이 유통이 가능하다.

위기감을 느낀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중국과 스웨덴은 시범 운영에 나서 내년 상반기(1∼6월)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한국 역시 올해 말 시범 운영에 나선다.

CBDC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화폐다. 기존 암호화폐는 거래 기록과 검증 권한을 모두 동일하게 갖는 탈중앙화를 지향한다. 반면 CBDC는 소수만 기록 및 검증 권한을 갖고 익명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거래 속도가 기존 가상화폐보다 빠르고 거래 비용 역시 적어 화폐 역할을 하는 데 적합하다.

CBDC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전 국민 CBDC 계좌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직접적인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 현금과 달리 거래가 사후적으로 추적 가능하기 때문에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 민간의 영향력은 퇴보하는 반면 공공의 역할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CBDC 보유만으로 이자가 지급될 경우 은행 예금 수요가 줄어든다.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 증가, 수집 가능 정보 감소 등으로 신용 창출 활동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 중개와 지급 보증 등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책임자인 정부가 맡게 된다.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민간 금융회사가 제공하던 서비스를 중앙은행이 대체하는 과정에서 운영 리스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존 가상화폐 입지는 다소 위축될 수 있다. 디지털이라는 장점이 CBDC 등장으로 퇴색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규제까지 심화할 경우 CBDC와의 경쟁에서 쉽게 밀려날 가능성도 높다.

다만 가상화폐가 지닌 탈중앙화의 특성을 바탕으로 ‘가치저장의 수단’으로서 비트코인 등 일부 암호화폐의 매력은 부상할 것으로 판단된다. 내재가치에 대한 의심이 컸던 과거와 달리 기술이 지닌 잠재력을 기반으로 가상화폐 생태계를 재평가할 수 있게 됐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cbdc#금융 환경#현금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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