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은 고(故) 조양호 전 회장 2주기를 맞아 8일 조촐한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조양호 전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올해도 선영 참배 가족행사에 불참했다.
조원태 회장과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민 (주)한진 부사장 등 한진일가와 그룹 고위 임원단은 이날 오후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소재 신갈 선영에서 2주기 추모식을 엄수했다.
석태수 한진칼 대표와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 최정호 진에어 대표 등 그룹 주요 임원 및 관계자 100여 명이 이날 추모식에 대거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추모식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야외에서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하는 가운데 차분히 진행됐다.
재계와 항공업계 관심을 모은 조현아 전 부사장은 이날 추모식에 불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조양호 전 회장 1주기 추모식에도 불참한 바 있다. 조 전 회장 별세 이후 경영권을 두고 충돌한 ‘남매의 난’ 후유증이 아직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와 항공업계에서는 이날 추모식에 불참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추후 경영권을 두고 재차 조원태 회장에게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사모펀드 KCGI 산하 그레이스홀딩스, 대호개발과 3자연합을 구성해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분쟁에 나선 바 있다. 3자연합의 한진칼 보유지분은 40.39%에 달해 조 회장측 36.66%를 앞섰지만, 10.66%를 보유한 산업은행이 손을 들어준 조원태 회장이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3자연합은 지난 2일 한진칼 주식 공동보유계약 종료로 상호 간 특별관계가 해소됐다고 공시하며 경영권 패배 공식승복 수순에 들어갔다. 산은이 조 회장을 지지하는 한 경영권 쟁탈이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조 회장이 1년3개월 간의 분쟁 끝에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다.
조원태 회장은 현재 산은과 산업부·국토부 등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지난해 글로벌 항공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거둔 경영실적은 경영권 쟁탈에 나선 조 전 부회장 입장에서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조원태 회장이 산은의 지원을 토대로 조 전 부사장과 분쟁에서 승리한 만큼 향후 경영권을 공고히 다져가기까지 상당 기간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가 예상되며 조현아 전 부사장이 권토중래를 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화물 운송 분야의 선전으로 지난해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지만, 여객운송 시장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향후 화물운임 변화에 따라선 언제든 대한항공 실적 선방이 뒤집힐 수 있어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이 남아있는 것도 조원태 회장의 이른 축배에 제동을 걸고 있다. 정부부처와 긴밀히 협의하며 진행 중인 M&A에 대한 낙관론도 있지만, 독·과점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론의 향배를 공정위가 예의 주시할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항공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자력회생이 불가능한 만큼 독과점 방지 조항 등을 전제로 한 ‘조건부 기업결합 승인’ 전망이 높다. 또한 운수권 배분 권한을 가진 국토부도 권한행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상태다.
이밖에 수 천억원 규모의 상속세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불거진 해외 비자금 의혹 역시 잠재적 변수로 지적된다.
이날 추모식에서 확인됐듯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갈등이 미봉된 상태에서 상속세 납부를 위한 지분 매각은 양측 모두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다. 국세청이 한진일가 자금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점도 양 측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지난해 대한항공이 초긴축 경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 속에서도 조원태 회장은 전년 대비 40%가량 인상된 31억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여론 비난을 익히 예상하면서도 연봉인상을 강행한 배경으로 상속세 부담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조원태 회장은 조현아 전 부사장과의 경영권 분쟁에 쐐기를 박는 것과 동시에 상속세 문제도 풀어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실적 선방과 아시아나항공의 성공적 인수·합병도 당면한 과제다.
한편 지난 2019년 별세한 조양호 전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실무·경영을 통해 대한항공을 굴지의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전 회장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데 이어, 2000년대 들어선 국제 3대 항공동맹체 스카이팀(SkyTeam) 창설을 주도했다.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기를 겪은 2003년에는 차세대 항공기 도입을 유리한 조건으로 끌어내 대한항공 성장의 발판도 마련했다.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1년 10개월간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에 나서 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냈다. 당시 조 전 회장이 만난 IOC 위원은 110명중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도 맡았지만 박근혜정부 핵심 실세와 갈등 끝에 사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밖에 조 전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지냈고,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을 맡은 바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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