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3苦’에 절규하는 청춘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6일 03시 00분


코로나 3苦세대 <상> 빈곤세대 내몰리는 청년들
체감실업률-물가상승률로 산출한 ‘청년 경제고통지수’ 6년來 최악
가장 필요한것? 돈-취업-직장 꼽아


‘집-카페-PC방-편의점-집.’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 안지완 씨(24·여)의 지난해 하루 동선이다. 월세 15만 원을 포함한 월 생활비 60만 원을 감당하려면 알바로라도 ‘투잡’ ‘스리잡’을 뛰어야 했다. 안 씨는 “가게 사장님들이 주 15시간 이상 고용하면 주휴수당을 줘야 한다고 14.5시간씩만 고용했다. 알바를 여러 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험한 일은 기피한다고들 할 땐 서운하다. 안 씨는 최근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만드는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손목터널증후군과 관절염을 얻어 고생하고 있다. 병원 갈 짬도 내기 어렵다. 그는 “관리자가 ‘네가 빨리 못 하면 누구든 대체해 투입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속상했다. 무리하게 속도를 내다 몸이 축나는 줄도 몰랐다”며 “일자리는 구하기 힘든데 생활비가 자꾸 올라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안 씨의 이야기는 우리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청년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15일 동아일보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산출한 ‘청년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는 지난해 113.36으로 분석이 가능한 2015년(100) 이후 가장 높았다. 경제고통지수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지표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경제적 삶의 질을 수치화하기 위해 고안했다. 청년 경제고통지수는 청년(15∼29세)의 체감실업률과 청년의 소비 비중이 높은 외식비, 주거비 등으로 구성한 청년물가지수 상승률로 산출했다.

알바 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운 실업난과 치솟는 생활물가 같은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심리적 좌절감을 키운다. 본보와 잡코리아가 3월 20∼29세 청년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물으니 ‘돈’(58명), ‘취업’(33명), ‘직장’(13명) 등의 답이 많았다. ‘사랑’, ‘꿈’ 등의 단어는 드물었다. ‘몇 년 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란 질문엔 응답자의 30.1%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도 극심한 취업난(失業苦)과 생활고(貧苦), 사회적 고립(孤獨苦) 등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20, 30대 ‘3고(苦) 세대’의 억눌린 분노가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청년문제를 일자리의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 직업교육, 심리상담 등 청년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다각적으로 확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정부와 여당이 공공 일자리를 만들거나 청년수당을 주는 식으로 환심을 사려는 ‘청년팔이’에 집중했다”며 “직업교육에 집중하고 민간이 일자리를 만들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영업 무너지자 알바마저 잘리는 청년들… 경제고통지수 최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릴 수도 있죠. 그런데 굶어 죽는 게 더 무서워요.”

홀로 사는 대학생 박모 씨(23)는 얼마 전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나온 콜센터에 알바로 취업했다. 박 씨는 지난해 각종 알바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한 카페에는 알바 1명을 구하는 데 400명이나 몰렸다. 박 씨는 “복학하려면 돈을 모아야 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한테 손을 벌릴 순 없다”며 “학비는커녕 생활비조차 부족하다”고 했다.

20, 30대 청년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고통은 취업난이다. 코로나19로 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영업을 줄이면서 알바 자리도 귀해졌다. 청년들은 일자리와 소득이 끊기면 자산 축적 기회도 잃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에서 등장한 ‘닌자(NINJA·No Income, No Job or Asset)세대’의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문 닫는 자영업자, 가게 밖으로 내몰리는 청년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비임금 근로자 중 직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30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9만4000명(6.7%) 줄었다. 반면 직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15만2000명으로 같은 기간에 1만3000명(0.3%) 증가했다. ‘더는 못 버티겠다’고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의 등 뒤엔 일자리를 잃은 ‘청년알바’들이 있다.

“스무 살 이후 알바를 멈춘 적이 없는데 반년 넘게 쉬고 있네요.”

부산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 4학년 이모 씨(23·여)는 3년 넘게 이어온 ‘알바 릴레이’를 멈췄다. 일하던 초밥집이 문을 닫아서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어머니도 생계가 어려워 딸을 도울 수 없다. 이 씨는 당장 생계가 막막하지만 정규직 취업도 아닌 ‘알바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돈은 만만치 않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조모 씨(24·여)는 취업에 필요한 영어, 자격증 준비 학원을 포기하고 유튜브 무료 강의를 듣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대면 면접을 할 때 회사에서 면접비를 줬지만 이제는 화상면접을 위한 장소까지 지원자가 준비해야 한다. 조 씨는 “지원한 회사에서 화상 면접 공간으로 쓸 스터디룸을 대여해 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청년도 자영업자들처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에 따른 피해를 봤다”며 “정부가 청년들의 재교육, 주거 지원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일, 소득, 자산 없어… ‘가상화폐’가 탈출구
문제는 앞으로 수년간 취업 못한 구직자들이 쌓이고 고용 상황이 크게 나아지기 어려워 ‘취업 병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일자리, 소득이 없으니 자산은 더욱 모으기 힘들다. 취업이 늦어질수록 빈곤세대로 전락할 위험이 커진다. 간신히 취업한 청년마저 저성장, 저금리에 자산을 쌓기 어렵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학 졸업자는 졸업연도 실업률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취업 1, 2 년차 연간 임금이 4.3%, 3, 4년 차에 2.3%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청년들의 자산은 타격을 입고 있다. 통계청이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통해 집계한 세대별 자산 수준을 살펴보면 지난해 2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자산은 1억720만 원으로 전년(1억994만 원)에 비해 2.5% 감소해 전 연령층 중 유일하게 감소했다.

자산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희망을 잃은 이들은 가상화폐 투자에서 탈출구를 찾기도 한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 씨(27)는 3년 전 군에서 전역한 뒤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 채 부모에게 받는 월 50만 원의 용돈으로 비트코인에 투자 중이다. 이 씨는 ““정규직 입사자들의 한 달 월급을 벌기 위해 새벽까지 잠을 설치며 가상화폐 거래소 애플리케이션(앱)을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는 처지가 서글프지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영원히 낙오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투더문(To the moon·코인 값이 달까지 수직 상승하길 바란단 의미)’ ‘떡상(시세급등)’ ‘떡락(폭락)’ 등의 가상화폐 투자 관련 은어도 유행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들의 경력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저성장에 갇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력 없네요” “30대는 좀…” 66곳 중 63곳 알바 면접도 못봐


현재 청년들은 단기 아르바이트(일명 알바)마저 구하기 어려울 만큼 악화된 일자리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용 사정이 악화된 30대들은 알바조차 구하기 어렵다. 지난달 30대 초반인 본보 남건우 기자가 66곳의 알바에 지원해 봤지만 면접 제의가 들어온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현재 청년들은 단기 아르바이트(일명 알바)마저 구하기 어려울 만큼 악화된 일자리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용 사정이 악화된 30대들은 알바조차 구하기 어렵다. 지난달 30대 초반인 본보 남건우 기자가 66곳의 알바에 지원해 봤지만 면접 제의가 들어온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동종업계 경력자 우대.’

‘21∼27세만 지원 가능.’

지난달 16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알바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생이던 5년여 전 한 식당 주방에서 잠시 뚝배기 그릇을 닦았던 마지막 알바 경험을 떠올리며 음식점 알바 자리를 알아봤는데, 이제 그 정도 경력의 30대 초반 구직자를 반기는 곳은 별로 없었다. 식당 서빙과 카페 알바 자리의 대부분은 20대만 뽑거나 숙련된 경력자를 원했다.

지원 자격에 나이 제한이 없는 대학가 근처 카페의 알바 공고를 어렵게 찾았다. 시급은 8720원. ‘지원’ 버튼을 눌렀다. “앞으로 1년 계획은 어떻게 되나?” 단기 알바를 지원했는데 앞으로 1년 후 계획까지 자기소개서를 충실히 써야 했다. 다음 질문은 “이전 알바 경험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말해 달라”였다. 총 8개 질문에 30분가량 답변을 작성해 지원서를 제출했다. 정규직 일자리 자기소개서 못지않은 시간을 들였다. 결과는 낙방. 카페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66전 63패 3승. 33세인 본보 기자가 지난달 알바 구직시장에서 받은 성적표다. 66곳의 알바에 지원해 3곳으로부터만 면접 제안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청년들의 알바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경력이 없고 나이가 많으면 알바 구하기가 더 어렵다.

대부분의 구인공고에는 ‘동종업계 경력자 우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근무 경력을 유독 강조하는 한 편의점은 지원할 때 ‘경력이 있느냐’고 재차 묻기도 했다. ‘편의점 알바 경험은 없지만, 성실히 일하겠다’고 이력서에 적었지만 면접 제안을 받지는 못했다.

지원 자격을 20대로 제한한 카페도 많았다. 30대는 아예 지원할 수도 없었다. 한 사장님은 “아무래도 손님과 직접 대면하는 알바생은 20대를 선호한다”며 “나이가 젊으면 좀 더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다”는 편견을 드러냈다. 면접에서도 “지금 직업을 가질 나이 같은데 알바를 하려는 순수한 의도가 무엇이냐”며 집요하게 나이를 물고 늘어졌다.

치열한 알바 구하기 경쟁은 면접 현장에서도 느껴졌다. 기자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일식당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이미 한 남성이 면접을 보고 있었다. 기자가 면접을 할 때 또 다른 여성이 들어와서 차례를 기다렸다. 식당 주인은 “할 사람은 많으니 하루만 일하고 관둬도 된다. 미리 얘기만 해달라”고 얘기했다.

면접을 끝내고 나올 땐 “알바를 못 하면 생활비 감당이 안 된다”는 한 청년의 말이 떠올랐다. 기자가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5년 전에도 ‘청년 실업’은 이슈였다. 그때에 비해 청년 고용시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30대에겐 더 벽이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지속되다 3월에야 13개월 만에 일자리가 늘었다. 정부의 일자리 사업으로 20대 청년과 60대 이상의 노인 일자리는 증가했지만 30대 취업자는 전년 동기보다 17만 명이 줄었다. 3월 ‘쉬었음’이라고 답한 인구는 30대가 전년 동기보다 11.1%나 증가했다. 30대의 증가율은 은퇴 세대인 60세 이상의 증가율(11.7%)과 엇비슷했다.

세종=남건우 woo@donga.com·송충현 기자·구특교 기자
#코로나19#청년실업#코로나 3苦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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