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 완화와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 조절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공공 주도의 공급 확대를 고집했던 그간의 정부 정책을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여당은 한발 더 나아가 당내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설치한 뒤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을 상위 1,2%의 초고가 주택으로 제한하고 60세 이상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 등을 적극 추진 중이다.
참패로 끝난 ‘4·7 보궐선거’를 통해 확인된 부동산 문제가 10개월 여 남짓 앞으로 다가선 대통령 선거에서도 핵심 이슈로 불거질 게 확실시되자 표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내년 공시가격 산정을 위한 기초 작업이 7,8월 중에 시작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물리적인 시간여유가 많지 않아 정책 수정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이런 정책 수정 방침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무엇보다 여권의 일부 핵심 지지층의 반발이 심상찮다.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자산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 뒤집히는 정책들…정부, 보유세·공시가 재검토
정부와 여당이 그동안 추진해온 부동산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는 신호를 다양하게 내보내고 있다. 홍 직무대행은 어제(19일)에 이어 오늘(20일)까지 이틀 연속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 참석해 “작년에 부동산 가격이 많이 뛰고, 공시가격 현실화율까지 고려해 세 부담이 많이 늘어났다”며 “세 부담을 줄여주고, 경감 부분에 대해 최대한 고려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어 종부세에 대해서도 “9억 원 기준이 11, 12년 전에 마련된 것이다. 저도, 기재부도 (종부세 기준을 완화해달라는) 의견을 많이 받았다”며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 잘못된 시그널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짚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속도 조절과 종부세 기준 완화 등의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노 국토부 장관 후보자도 19일 첫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공 주도와 민간사업이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2·4대책’에도 기존에 있는 대책의 한계점을 돌파하기 위해 서로 ‘윈-윈 하자’는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에 국민의 시각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절충점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임자였던 변창흠 전 장관이 세웠던 공공 주도 공급 확대 방침을 수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뒤집히는 정책들…여당, 세제 및 대출 규제 완화 요구
더불어민주당은 좀 더 적극적이다. 19일 당내에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설치한 뒤 주택공급·금융·세제·주거복지 등 부동산 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보유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관련한 다각적인 방안을 심층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1주택자 종부세 과세기준을 주택가격(공시가 9억 원 초과)에서 비율(상위 1,2%의 고가주택 보유자)로 개편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상위 2%는 25만 가구에 해당한다.
민주당은 소득 없이 세 부담만 늘어난 65세 이상 고령 은퇴자들을 위해 1주택자의 경우 종부세 등 보유세를 주택을 매각하거나 상속·증여할 때 같이 내게 하는 ‘과세이연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공시가 6억 원 이하에 대한 재산세 일부 감면 기준을 9억 원으로 높이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민주당은 이와 함께 장기 무주택자와 청년, 신혼부부 등 실수요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이달 말 발표할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 시작된 대선 레이스, 물리적 시간 여유 많지 않아
정부와 여당의 이같은 행보는 ‘4·7 보궐선거’ 참패 직후 예상됐다. 무엇보다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쏟아낸 25번의 정책에도 집값이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시가격의 급속한 현실화와 이로 인한 세 부담 증가가 계속될 경우 내년 3월에 치러질 대선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4·7 보궐선거’ 참패에 LH 직원 땅 투기 의혹과 함께 치명타가 됐던 공시가격 산정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2022년도 표준지·표준주택·공동주택의 공시가격 산정을 위한 기초 작업은 이전 사례를 고려할 때 올해 7월과 8월에 시작돼야만 한다. 불과 2개월 남짓으로, 공시가격과 관련한 정부 방침을 수정하기까지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여당 의원들은 보궐선거 이후 앞 다퉈 부동산 정책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광재, 정청래 의원 등은 종부세 대상 완화를 요구했고,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나설 송영길, 우원식, 홍영표 의원 등도 부동산 정책 수정 요구에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병욱 의원은 아예 20일 종부세법과 재산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현재 2주택 이상 소유자는 공시가격 6억 원 이상, 1주택자는 공시가격 9억 원 이상으로 돼 있는 종부세 대상자를 각각 7억 원, 12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이 담겼다. 또 만 60세 이상 1주택자에 대한 과세이연제도 포함됐다.
● 집토끼 반발 등 넘어야할 산 적잖아
문제는 정부와 여당의 이런 정책 수정 방침을 실행하기까지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여권의 핵심 지지세력으로 꼽히는 일부 시민단체와 좌파 성향의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LH 직원 땅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참여연대가 대표적이다. 정부와 여당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 수정 방침이 발표되자 잇따라 비판적인 논평을 쏟아내며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15일 논평을 내고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는 무주택자 대출규제 완화, 1주택자 종부세 감면, 민간개발 활성화 등은 집값 폭등과 자산불평등을 공고히 할 명백한 선심성 행보”라며 “진단과 처방이 맞지도 않는 선심성 꼼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이어 19일에도 “1주택자의 종부세 부과 기준을 완화하자는 주장은 부동산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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