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자 광풍]“가입하면 코인 지급… 지인 끌어오면 현금” 유혹
각종 이벤트 내세워 소비자들 호객… 국내 거래소 중 B등급 이상 6곳뿐
특금법에따라 대다수 폐쇄 불가피, 투자자 보호 제도 없어… 우려 커져
대학생 박모 씨(25)는 올해 초 한 중소형 거래소에 가입해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이름 있는 대형 거래소도 알아봤지만 가입만 하면 2만 원 상당의 코인에 기프티콘까지 준다는 말에 넘어갔다. 조만간 거래소가 시중은행과 손잡고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해 준다는 약속도 솔깃했다. 박 씨는 “은행과 제휴했다는 소식은커녕 중소형 거래소들이 문 닫을 수 있다는 얘기만 들려 불안하다”고 했다.
국내에 난립한 200여 개 가상화폐 거래소 중 상당수가 무더기로 폐쇄할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여전히 ‘무료 코인’ ‘연 90% 코인 이자’ 등을 내걸고 투자자를 유인하는 중소 거래소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투자자 보호 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런 거래소에 발을 들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연 90% 이자, 공짜 코인으로 투자자 유혹
22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서는 실명 인증이 필요 없는 소규모 거래소를 홍보하고 신규 가입을 유도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신규 가입자가 지인을 소개하면 1만, 2만 원 상당의 코인이나 현금을 지급하는 거래소도 많았다.
은행 예금처럼 가상화폐를 일정 기간 맡겨두면 최대 연 90%가 넘는 이자를 주는 거래소도 등장했다. 투자자가 맡긴 가상화폐를 직접 운용해 수익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이 거래소가 판매한 ‘코인 예치 상품’은 4개월 만에 가입자 5000명을 끌어들였다.
최근엔 시중은행과 제휴를 앞두고 있다고 광고하는 거래소가 크게 늘었다. 지난달 25일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9월 말까지 실명 계좌를 갖추지 못한 거래소는 영업을 할 수 없다. 은행에서 실명 계좌를 받기 어려운 중소형 거래소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 같은 광고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선 9월 이후 살아남을 거래소가 4, 5개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미 자발적으로 문을 닫는 거래소도 나왔다. 2018년 10월 문을 연 거래소 ‘데이빗’은 6월부터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 데이빗 측은 “특금법 시행에 따른 규제 환경의 변화로 정상적인 거래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거래소들이 규제 환경 변화에도 투자자 모집에 적극 뛰어드는 것은 3년 만에 다시 불붙은 코인 광풍을 타고 신규 투자자가 대거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거래소는 거래가 급증하면서 하루 수수료 수입이 1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 글로벌 평가 상위 등급 거래소 6곳뿐
문제는 제도권 금융회사와 달리 난립한 거래소 상당수가 내부 통제, 보안 등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6개월∼1년이 걸리는 주식 상장과 달리 가상화폐는 한두 달이면 거래소 상장이 가능하다. 정보 공시 체계를 갖추지 않은 데다 사고가 나도 투자자를 보호할 장치도 마땅치 않다.
실명 계좌를 갖추지 않은 거래소가 운영하는 ‘벌집계좌’는 불법 거래에 악용될 가능성도 높다. 벌집계좌는 거래소 명의의 법인 계좌를 만들어 투자금을 받은 뒤 투자자마다 개인 장부를 만들어 입출금을 관리하는 식이다.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 분석사이트 ‘크립토컴페어’가 내부 규율, 데이터 공급, 보안 수준, 자산 다양성 등을 기준으로 세계 거래소를 평가한 결과, 국내에서 B등급 이상을 받은 거래소는 6개에 불과했다.
황수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형 거래소는 거래량이 적다 보니 시세 조종 등 작전 세력이 개입할 여지가 더 크다”며 “투자자는 거래소 옥석을 가려 이용하고, 금융당국도 거래소 무더기 폐쇄의 부작용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벌집계좌::
은행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중소형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운영하는 거래소 법인 명의 거래 계좌.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실명 확인 없이 이 법인 명의 계좌로 받고 개인 장부 형태로 입출금을 관리하기 때문에 불법 거래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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