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38세금징수과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 씨였다. 그는 2017년 지방소득세 등 10억 원 가량의 세금을 수년 째 내지 않은 고액체납자다. “사정이 어렵다”며 세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뤄왔지만 A 씨는 이날 그동안 밀린 세금을 전부 내겠다고 했다. “여윳돈이 없다”던 그는 5억8000만 원의 세금을 내고, 병원 명의의 예금 계좌를 담보로 나머지도 곧 납부하겠다고 했다. A 씨의 행동이 갑자기 돌변한 이유는 서울시가 그의 가상화폐를 압류했기 때문이다. A 씨가 가지고 있던 가상 화폐 가치만 125억 원이 넘었는데 거래가 막히자 울며 겨자먹기로 세금을 납입한 것이다.
상습 고액체납자들이 세무당국의 눈을 피해 숨겨뒀던 가상화폐가 압류되자 부랴부랴 밀린 세금을 내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이 치솟자 매각 보류까지 요청하며 서둘러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서울시38세금징수과가 가상화폐 거래소 3곳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확인한 결과 가상화폐를 보유한 고액체납자 1566명. 이 중 즉시 압류가 가능한 676명(체납액 284억 원)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251억 원(22일 기준 평가금액) 상당의 가상화폐를 가지고 있었다. 서울시는 곧바로 계좌를 압류하고 거래를 정지시켰다.
가상화폐 압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학원강사 B 씨는 “세금을 낼 능력이 안된다”며 5600만 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전자지갑에는 31억5000만 원의 가상화폐가 들어 있었다. 그는 가상화폐 거래가 막히자 사흘 만에 체납 세액 전부를 납부했다. 고액 체납자 C 씨도 2010년부터 11년 간 지방소득세를 내지 않다가 1억7000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가 서울시의 압류로 권리행사를 못하게 되자 체납액 3700만 원을 즉시 납입했다. 이렇게 118명의 체납자가 12억6000만 원의 밀린 세금을 스스로 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가상화폐 가격이 계속 오르자 세금을 납부해 압류를 푸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1월부터 ‘경제금융추적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가상화폐 등의 은닉 재산을 확인해 세금 납부를 독촉하고 있다. 이후에도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 가상화폐를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매각대금이 체납액보다 많으면 체납액을 충당한 나머지는 돌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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