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은 올해 기업명과 로고, 슬로건을 모두 바꾼 자동차 기업 ‘기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아는 1944년 ‘경성정공’으로 출발한 기업입니다. 1952년 ‘기아산업’, 1990년 ‘기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꿨고 1998년 IMF 위기 속에 현대차그룹에 합병됐습니다.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에서 시작해 삼륜차를 거쳐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까지.
생산하는 제품의 바퀴 숫자를 늘려온 것처럼 빠르게 위상을 높여온 기아는 최근 매년 국내·외에서 260만 대 이상의 차를 판매하면서 현대차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이 됐습니다.
현대차그룹에 합류하면서도 기업명을 바꾸지 않았던 기아가 자동차 산업이 격변하고 있는 2021년에 큰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클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외부에 쉽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V2L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 출시를 계기로 ‘에너지 운반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전기차를 살펴본 지난 휴일차담에 보내주신 관심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차 한 대 완충하면 가정용 전기 10일치… 생활 바꾸는 전기차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10410/106343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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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onga.com/news/Series/70010900000002
● ‘기아자동차’에서 ‘기아’로
기아자동차가 올해 기업명을 ‘기아’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연초에 새로운 사명과 로고 등을 공개했고 3월 주주총회에서 관련된 정관 변경을 확정지었습니다.
공시를 살펴보면 국문명 ‘기아자동차주식회사’, 영문명 ‘KIA MOTORS CORPORATION(약호 KMC)’이었던 상호가 ‘기아 주식회사’, ‘KIA CORPORATION(약호 KIA CORP.)’이 됐습니다.
붉은색 타원 안에 ‘KIA’라는 굵직한 글자가 적혀 있던 로고를 역동적으로 바꿨고 회사의 슬로건도 ‘무브먼트 댓 인스파이어스(Movement that inspires)’로 새로 설정했습니다.
새로운 슬로건에 대해 기아는 새로운 생각이 시작되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동을 통해서 새로운 생각과 영감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명 변경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만, 이 슬로건에도 이동과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 그리고 가치 모두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 31년 만에 ‘자동차’를 뺀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변화 속에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사명에서 ‘자동차’를 뺀 것입니다.
자동차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멀리 갈 것이 없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9년 타운홀 미팅에서 밝힌 장기 계획이 바로 ‘자동차 50%, 도심항공 모빌리티(UAM) 30%, 로보틱스 20%’였습니다.
UAM과 로보틱스 분야에서 일단 현대차가 앞장을 서는 모습이지만 기아도 상당한 비중으로 UAM·로보틱스는 물론 수소전기차까지 포함된 미래 신사업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업이 본격화되면 기아 역시 큰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의 급격한 확산과 더불어 모빌리티 서비스 분야 역시 앞으로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라는 점을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모두 확인한 상황입니다.
저는 지난해 휴일차담을 통해 친환경차 시대를 맞아 현대차와 일종의 역할 나누기에 나선 기아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요.
현대vs기아, 한몸처럼 지내다 친환경차 시대에 역할 나누나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00919/103010363/1
수소전기차에 큰 힘을 싣고 있는 현대차와 비교하자면 전기차 분야에서 더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아는 올해 다양한 미래 신사업에서 자동차 생산이라는 영역에 갇히지 않겠다는 뜻을 확실히 드러낸 셈입니다.
기아가 이번에 사명에서 덜어낸 ‘MOTORS’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전통적인 형태의 차량 그리고 그런 차량의 생산 활동에 방점을 찍은 단어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 ‘기아차 소하리 공장’ 대신 ‘기아 오토랜드 광명’으로
이런 기아에서 올해 제가 가장 재미있게 본 모습은 전국 각지의 공장에 ‘오토랜드’라는 이름을 붙인 일입니다.
기아차 시절의 소하리·화성·광주 공장이 오토랜드 광명·화성·광주로 거듭났습니다.
○○랜드 혹은 ○○월드. 약간 놀이공원 느낌도 납니다만…
‘자동차의 땅’이라니 간단명료하면서도 확실한 작명입니다.
자동차 업계를 출입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신선한 충격이면서 ‘이제서야…’라는 생각도 드는 일이었습니다.
소하리에 있는 기아차의 생산기지이니 기아차 소하리 공장이고 울산에 있는 현대차의 생산기지이니까 현대차 울산공장인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습니다.
공장이니까 공장으로 이름 붙인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일입니다만…
국내·외의 자동차 업계를 살펴보다보면 너무나도 뿌리 깊은 ‘공급자 중심의 생각’이 여기서도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좀 과하게 말하자면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기업은 행동을 바꿀 의지가 전혀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공장도 마케팅에 활용
독일 폭스바겐의 경우 여러 공장을 일종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츠비카우 공장의 경우 오랜 기간 내연기관차 생산의 전초 기지였던 곳에서 내연기관차 생산이 중단된다는 점, 전기차 전용 플랫폼(MEB) 차량을 생산하는 스마트 팩토리가 구축됐다는 점 등이 모두 홍보 대상이었습니다.
폭스바겐의 드레스덴 공장은 유명 레스토랑의 ‘오픈 키친’과도 같은 투명 유리 공장으로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기가 팩토리’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지로 생산기지를 넓히고 있는 테슬라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반면에 현대차가 그렇게 자랑하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세단 차량을 생산하는 곳은 여전히 ‘울산5공장’입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세계적으로 봐도 가장 큰 자동차 생산기지입니다. 그리고 불모지에서 시작해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대표하는 곳입니다.
이 역사를 감안하면 과거의 유산을 지켜내는 것도 의미가 클 수 있습니다만 때로는 발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귀족노조’라고 비판받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온 근로자들에게는 조금 새로운 이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일하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도 부여해보고 엔지니어로 대접하려는 노력은 결국 기업 전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내가 타는 차가 ‘익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이 아니라 ‘투명하게 공개된 스마트 팩토리’에서 생산된다는 것이 고객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공장도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얘기가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흘러갔습니다만…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저는 ‘오토랜드’라는 새로운 작명을 시도한 기아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공장이 생산·제조에 치우친 느낌을 주기보다는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대차그룹 역시 ‘이-포레스트(E-FOREST)’란 이름으로 스마트 팩토리 브랜딩에 속력을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장에 새로운 이름을 붙인 기아의 시도와 더불어서 현대차그룹 전반이 이런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기아가 현대차그룹의 변화를 먼저 보여주는 것일 수도”
올해 기아의 시도를 보면서 저는 기아가 현대차그룹에서 일종의 전위부대 혹은 선봉부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현대차라는 덩치 큰 본진이 한번에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기아가 먼저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현대차와 현대차그룹의 경우 ‘차’라는 글자 하나를 빼는 것만해도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직접 움직이는 일의 무게감이 클뿐더러 고(故) 정주영 창업주로부터 시작된 현대가(現代家) 내부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더 그렇습니다.
그러하기에, 기아가 보여주는 새로운 방향성은 현대차그룹 전체가 앞으로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전기차 등에서 새로운 길을 가는 상황이라면 ‘기아’라는 브랜드의 힘을 얼마나 키울 수 있을 것이냐 등의 문제가 앞으로의 기아에게 현실적이고 또 중대한 과제이겠습니다.
올해 기아의 변신을 계기로, 앞으로는 현대차와 기아가 서로 어떤 전략으로 미래차 시대에 대응하는지를 살펴보시는 것도 자동차 산업을 바라보는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련된 소식들을 종종 추가로 업데이트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기아에서는 기존 고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차량의 구형 로고를 신형 로고로 교체하는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 봤지만 ‘어렵다’고 결론 낸 것으로 보입니다.
로고라는 것이 스티커처럼 외장 강판 위에 붙이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는 등의 문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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