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투자 광풍]당국 “투자현황 보고” 부랴부랴 단속
자진신고 안하면 확인할 길 없어
실태파악 힘들어 단속효과 의문
“눈치 보면서 몰래 하는 거죠. 신고 안 하면 알 길이 없습니다.”
금융감독원 직원 A 씨는 2019년 초부터 가상화폐 투자를 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500만 원 안팎일 때 투자를 시작해 수익률도 꽤 높다. A 씨는 “주식 투자와 달리 가상화폐 투자는 다른 사람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가상화폐 투자 열기는 공무원이나 금감원 직원도 예외가 아니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직원들의 투자 현황을 단속하고 나섰다. 2018년 코인 광풍 때 내규를 통해 직원들의 가상화폐 거래를 제한했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원의 자발적 신고 외에는 코인 투자 실태를 점검할 방법이 없어 단속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 달 7일까지 가상화폐 관련 부서 직원들에게 투자 현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은행과, 자본시장과, 금융혁신과 등 전체 부서의 3분의 1가량이 해당된다. 금감원도 22일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거래 유의사항 안내’를 발송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2018년 훈령(내규)을 만들어 임직원의 가상화폐 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직원들은 가상화폐 투자를 전면 금지하고 다른 직원들도 가급적 투자를 자제하도록 권고한다. 2017년엔 가상화폐 대책을 준비하던 금감원 직원이 대책 발표 직전 가상화폐를 팔아 50%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금융당국이 다시 직원들의 코인 투자 단속에 나선 것은 투자자의 원성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가상화폐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고 말한 뒤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6일 오후 4시 현재 13만 명가량이 동의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 위원장의 발언은 가상화폐 투자를 하지 말라는 건데 이 와중에 당국자가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면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집안 단속에 나섰지만 직원들의 투자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주식 투자 현황은 거래 내용 등을 본인 명의 계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가상화폐 거래는 거래소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없어 직원들이 투자 정보를 자진해서 제공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수단이 마땅찮다. 더군다나 가상화폐는 공직자윤리법상 재산신고 사항도 아니어서 ‘몰래’ 투자하는 직원들을 걸러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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