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 ‘속도전’을 강조하던 정부가 수도권 11만 채를 포함해 총 13만1000채를 지을 수 있는 택지지구 지정을 6월 이후로 연기했다. 당초 상반기(1∼6월) 내 신규 택지를 모두 발표하려 했지만 후보지에서 투기 정황이 대거 포착됨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의혹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대규모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봤던 수도권 신규 택지 발표가 미뤄지면서 공공 주도 공급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 “택지 후보지, 외지인 거래 절반 이르기도”
29일 발표를 미룬 물량 대부분은 수도권 택지다. 투기 정황 역시 수도권 택지에서 많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날 택지 후보지에 대해 최근 5년간 토지 거래 동향을 조사한 결과 몇몇 후보지에서 특정 시점에 거래량이 종전의 2∼4배 수준으로 급증하거나 외지인 거래가 전체 거래의 절반에 이르는 사례가 나왔다고 밝혔다. 또 주변 지역보다 지가가 1.5배로 높아진 후보지가 있다고도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전과 비교해 거래량 자체가 조금이라도 통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거나 외지인 거래, 지분 거래 비중이 이전과 비교해 늘어난 경우 모두 발표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수도권에서는 정부가 3기 신도시 사업을 공식화한 2018년부터 신도시 후보지로 다양한 지역이 거론됐다. 동아일보가 신규 공공택지 지정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 거래내역을 분석한 결과 투기 의심 사례가 적지 않았다. 최근 3년 사이 지분 거래 비중이 늘어나는 등 투기 세력이 유입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다.
예를 들어 경기 하남시 감북동의 경우 2019년에는 토지 거래가 122건에 그쳤고 지분 거래 비중도 56.5%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0년 1∼6월에는 토지 거래량이 334건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80%가 넘는 286건이 지분을 나눠 매입한 거래였다. 감북동은 광명·시흥지구와 마찬가지로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가 2015년 해제된 곳이다.
경기 화성시 매송면의 경우 2018년 거래량이 547건으로 2019년 거래량 615건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분 거래 비중은 57% 선에서 76% 선으로 크게 늘었다. 기획부동산 등을 통한 지분 쪼개기 거래가 많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포시 고촌읍은 2018년 상반기 24.5%였던 지분 매입 비중이 2018년 하반기 57.1%로 대폭 늘어나기도 했다.
○ 수도권 신규 공급에 ‘빨간불’
정부는 이날 신규 택지와 별도로 기존 택지 용도 변경, 소규모 정비구역 지정 등을 통해 3만3000채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세종시 택지에 추가로 공급될 총 1만3000채의 경우 기존 택지 용적률을 높이거나 대학, 상업용지를 택지로 변경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급한다.
소규모 정비구역 중에선 종로구 구기동 상명대 북측,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박물관 남측 등 서울 40곳을 포함해 전국 도심 55곳(총 1만7000채)이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됐다. 또 주거지 재생에 초점을 맞춘 주거재생혁신지구 후보지로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파출소 북측 등 7곳(3700채)이 지정됐다.
대규모 물량이 나오는 신규 공공택지 공급 규모는 부족한 편이다. 이날 공개된 신규 택지는 울산선바위와 대전서산 등 1만8000채에 그쳤다. 정부는 올해 2·4공급대책을 통해 전국에 신규 공공택지를 지정해 수도권 18만 채 등 주택 26만3000채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경기 광명·시흥지구 등 기존에 발표된 택지(13만2000채)를 제외하면 수도권 11만 채를 포함한 13만1000채 규모가 추가로 지정돼야 한다.
정부는 이날 수도권 신규 택지를 이르면 6월 늦어도 12월까지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발표 시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못했다. 정부는 투기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도 택지 후보지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을 계획이다. 후보지 관련 토지 거래 내역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경찰 수사를 거치려면 신규 택지 지정 작업 자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 투기가 의심되지 않는 수도권 택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공개발 자체에 대한 국민 반감 해소도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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