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가 12년째 공전 중인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금융당국과 시민단체의 의지가 강한 데다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점차 많은 의원이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공청회를 시작으로 국회에서도 심의가 본격화하는 만큼 연내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10일 국회에서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관한 공청회가 열린다. 손보업계와 의료계는 물론 시민단체, 금융당국 등에서 토론자가 나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필요성과 우려 요소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지난달 12일에는 대한의사협회와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실손보험 의료기관 청구 의무화, 무엇이 문제인가’이란 주제의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번 공청회는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놓고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맞붙는 2라운드 성격인 셈이다.
국회도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정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지난해 고용진·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만 네번째 발의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고용진 의원(2018년)과 전재수 의원(2019년) 등이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더 많은 의원이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업계도 이번 기회를 잡기 위해 어느 때보다 분주한 모습이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라고 권고한 뒤 12년째 의료계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정지원 손해보험협회장도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주요 과제로 꼽은 후 정부와 국회를 오가며 법안통과를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손해보험사 사장단도 지난달 19일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 박상욱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등과 조찬 간담회를 갖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의료기관이 환자의 진료내역 등 증빙서류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전산망을 통해 보험업계로 전송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현재는 가입자가 의료기관에 직접 방문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 서류를 병원에서 발급받은 뒤 우편·팩스·이메일·스마트폰 앱 등으로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보험사는 이 서류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전산에 입력해야 해 서류심사와 전산입력, 보관 등에 들이는 인력과 비용 낭비가 크다.
청구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소비자가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2018년 보험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실손 보험금 청구 불편 등으로 소액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다고 응답한 가입자가 약 90%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는 물론 금융당국까지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의 취지에 공감하면서 법안 통과를 위해 힘을 실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실손보험이 민간 간의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에서 실손보험 청구를 대행하게 하는 것은 타당성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의료 수가를 조정하는 심평원이다. 심평원이 보험 청구를 명분 삼아 모은 데이터를 가지고 비급여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비) 가격 통일 등 통제에 나설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계와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회는 물론 금융당국, 시민단체의 의지가 커 5월 국회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법안 통과에 좀 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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