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 지 109일 만에 물러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노형욱 장관 후보자는 4일로 예정된 국회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어제(2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구원투수이자 임기가 1년 남은 정권의 마무리 투수로서, 기존의 정책을 고수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2일 더불어민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의원은 “(대선 승리를 위한) 변화를 위해 주저 없이 전진해야 한다”며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 조절 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2인3각’을 하듯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펼쳐왔던 정부와 여당 간에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당정 협의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 안정적인 마무리에 방점 찍은 장관 후보자
노 장관 후보자는 국회 답변서에서 새로운 주택 정책을 만들 계획이 없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는 “현재 주택시장이 안정화되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있다”며 “부족한 부분은 보완·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주택 공급대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부동산 투기 근절과 함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에 대해서는 “그간 도심 내 주택공급에 중요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해왔다”면서도 “토지주들의 과도한 개발이익 향유로 인한 부동산 시장 불안 야기, 조합원 간 갈등으로 인한 사업 장기 지연, 조합 내부 비리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도 야기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민간사업도 공공성을 확보하면 주택시장 불안을 야기하지 않는 범위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시가격에 대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고려해 원칙적으로 계획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계획을 고수할 방침을 밝혔다. 또 종합부동산세 완화에 대해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기존 방침을 유지할 뜻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다만 “올해 공시가격 변동이 커 보유세 등 부담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 만큼 공시가격을 반영하는 보유세나 복지제도 등에 대한 영향을 살피고 필요한 경우 관계부처와 관련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가격 시스템 자체보다는 세 부담 완화를 위한 부분적인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그는 또 주택 관련 대출 규제 완화 요구에 대해서도 “완화 여부는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 가계대출의 추이, 규제 완화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정책 수정 예고한 신임 여당 대표
이 같은 노 장관 후보자의 구상은 신임 민주당 대표로 뽑힌 송영길 의원의 선거공약과 상충되는 부분이 적잖다. 송 신임 민주당 대표는 후보시절 공약 등을 통해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민심과 유리되지 않도록 부동산 정책을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송 대표는 당선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종부세 조정은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노년 공제, 보유공제 비율을 조정해 1주택자의 공제한도를 늘려주는 방안이 있다”며 말했다. 또 “과세이연의 문제도 별도로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 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송 대표는 공시가격에 대해서도 “현실화 속도를 이렇게 집값이 오르는 경우에는 조금 늦출 필요가 있다”며 수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생애 처음 주택을 구입하는 신혼부부와 청년 등 실수요자에 대해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TV 완화가 집값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송 대표는 “집값이 상승한다고 청년이나 신혼부부들에게 평생 전셋집이나 월세방에 살라고 할 수 없다”며 “집값 상승 부분은 다른 정책적 수단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2030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정책 혼선으로 이어지면 국민 피해
양측이 정책 구상이 상충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구원투수로 나선 장관 후보자와 신임 여당 대표의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1년 남짓 임기가 남은 정부에서 갑작스레 장관을 맡게 된 노 장관 후보자로서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기에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특히 ‘2·4대책’을 포함해 25번에 걸쳐 쏟아낸 정책의 후속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반면 여당으로서는 ‘4·7 보궐선거’ 참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받는 부동산 정책을 그대로 두기 어렵다. 게다가 대선이 10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지난달 26~30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성인 2523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3.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주당의 지지율도 27.8%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 기록을 갈아 치웠다.
문제는 이런 양측의 부동산 정책의 입장 차가 불러올 부작용이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부동산학과)는 “앞으로 남은 임기를 안정적으로 마무리 짓고 싶은 정부와 정권 재창출이 목표인 여당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한 정책 균열이 정책 혼선으로 이어질 경우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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