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팬데믹 위기를 딛고 급반등 중인 미 경제의 과열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처음으로 시사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긴축 발작’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수차례 공언한 만큼 즉각적인 금리 인상은 없겠지만 금리 인상을 둘러싼 여건이 점차 무르익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 “경제 과열 안 되려면 금리 올려야 할지도”
옐런 장관은 4일(현지 시간) 미 시사지 애틀랜틱과의 사전 녹화 인터뷰를 통해 “경제가 과열되지 않게 하려면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며 “(미국 정부의) 추가 지출이 경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완만한 금리 인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준금리를 올려 실물경제 과열 양상과 인플레이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에 유동성을 기반으로 상승세를 이어온 기술주가 흔들리면서 나스닥시장이 1.88% 하락했다. 유럽(―1.89%) 독일(―2.49%) 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미 경제는 올 1분기 6.4%(전 분기 대비, 연율 기준) 성장한 데 이어 올해 연간 성장률이 7%대로 약 4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행정부는 3월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팬데믹 대응 예산을 통과시켰다. 4조 달러 안팎의 추가 재정지출 법안도 준비 중이다.
막대한 ‘돈 풀기’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는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미 소비자물가는 3월 2.6% 올라 연준 목표치(2.0%)를 넘어섰다. 4월 이후 3%를 넘을 거라는 관측도 많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회복세에 힘입어 원자재 시장도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 국제 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를 기준으로 4월에만 7.47% 뛰었고 철광석(13.55%), 구리(11.83%), 니켈(10.00%) 등도 일제히 급등했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 과열이 계속되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일부 자산은 가격이 높다. 자본시장에서 약간 거품이 있다”고 말했다.
● “시장에 금리 인상 소화할 시간 준 것”
옐런 의장은 파장이 커지자 이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연준의 독립성을 인정한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생기더라도 연준이 대응할 수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경제 수장이 속내를 드러낸 만큼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낸시 프라이얼 엑섹스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옐런 장관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경제가 과열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상이 좀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했다.
한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3년 8개월 만에 최대 폭(2.3%)으로 상승해 물가관리 목표(연간 2%)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한 금통위원은 “1분기 가계대출이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에도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금융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금융 안정 이슈에 대한 통화정책 차원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계부채 급증세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앞당겨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이주열 한은 총재가 조만간 금리 인상 여부에 대한 신호를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백신 접종이 계획대로 된다면 한은이 미국보다 빨리 11월이나 12월에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증시 일각에선 긴축에 대한 우려가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옐런 장관의 발언은 그만큼 경제가 좋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말로 갈수록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공론화 될 것이지만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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