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팔지도 투자금 찾지도 못해… 거래소 ‘비트소닉’ 피해 130여명
수사 진전없자 집단소송 나서기로… 가상화폐 투자피해 보호장치 없어
회사원 곽모 씨(34)는 지난해 5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소닉’에 가입해 가상화폐의 일종인 도지코인 1250만 원어치를 사들였다. 도지코인 가격이 급등하자 작년 말 곽 씨는 코인 일부를 팔기로 마음먹었다. 거래소 애플리케이션(앱)에 수량과 가격을 입력하고 ‘매도 버튼’을 눌렀지만 기대했던 매도 신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불안해진 곽 씨는 거래소 계좌에 남아 있는 예탁금을 찾기 위해 출금 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준비 중’이라는 문구만 뜨고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곽 씨는 “4개월이 넘게 흘렀는데도 투자한 코인을 팔지도, 돈을 찾지도 못하고 있다. 먹튀 거래소에 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화 연결이 가능한 비트소닉 고객센터 직원은 담당 부서로 전달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며 곽 씨의 애를 태우고 있다. 그와 같은 비트소닉 피해자들이 현재 13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비트소닉 앱은 지금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6일 오전 10시경 동아일보 취재진이 찾은 비트소닉 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서울 송파구 상가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사무실은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외벽에 검은색 시트지로 도배돼 있었다. 앱은 운영되고 있지만 건물 관리인은 “두 달 전부터 사무실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비트소닉 연락처와 e메일 등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월 말 비트소닉 거래소에 대해 사기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투자자들의 고소장이 수십 건 접수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거래소 압수수색이나 계좌 잔액 보전 조치 등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법무법인을 선임해 다음 주 집단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가상화폐 주무 부처가 없다 보니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등에 개별적으로 문의하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군소 거래소에서 투자자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처벌 규정은 물론이고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비해 피해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가상화폐 시장은 투자자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코인 사기 75억 피해… 금감원-소비자원 등 책임지는 곳 없어”
거래소 ‘비트소닉’ 피해자들 분통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돈을 주고 산 코인을 찾지 못해 여러 관공서에 민원을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하네요. 거래소 사이트를 통해 화폐를 사고파는 거니 전자상거래 아닌가요? 꼭 답변 주세요.”
거래소 ‘비트소닉’을 이용하던 투자자 A 씨는 지난달 말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 이 같은 내용의 민원을 올렸다. 금융감독원, 한국소비자원 등에도 민원을 넣었지만 답변을 듣지 못하자 공정위까지 찾은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정부 책임자들은 ‘투자는 자기 책임’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손을 놓고 있으니 속이 터진다”고 했다.
‘코인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검증이 안 된 중소형 거래소들이 투자금을 끌어모은 뒤 잠적하는 등의 사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 사기 피해를 예방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보호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 ‘반값’에 지금도 투자자 몰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터넷카페 ‘비트소닉 피해자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집계한 피해자는 이날 현재 130여 명, 피해금액은 75억 원에 이른다. 투자한 코인을 매도하지 못하거나 계좌에 예치한 예탁금을 출금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비트소닉의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앱)은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 매도, 출금은 안 되지만 코인 가격을 확인하거나 매수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날 오후 6시 현재 비트소닉 홈페이지에서는 비트코인이 3700만 원대, 이더리움이 197만 원대에 거래된다고 표시돼 있다. 같은 시간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에서 각각 6930만 원, 420만 원대에 거래되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반값 수준이다.
비트소닉에서 코인 가격이 저렴하게 형성되다 보니 지금도 신규 투자자들이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트소닉 피해자 C 씨는 “큰돈은 출금이 안 되는데 10만 원가량의 소액은 가끔 출금이 된다”며 “신규 투자금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출금을 해주면서 정상 거래소인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 거래소들의 ‘먹튀’ 사기도 늘고 있다. 최근 경찰이 강제수사에 나선 한 거래소는 “6개월 안에 3배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미끼로 투자자 4만여 명으로부터 약 1조7000억 원의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업비트가 지난해 12월부터 4월까지 접수한 코인 상장 관련 사기 제보 가운데 거짓 정보로 투자자를 유인한 뒤 연락이 두절되는 ‘먹튀’ 사례가 80%였다.
○ “어디에 호소해야 하나”
비트소닉 피해자들은 사기 피해 자체뿐 아니라 피해를 호소할 곳 없는 상황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가상화폐 관련 주무부처가 없다 보니 투자자들은 정부부처나 지자체를 돌며 민원을 넣거나 개별 소송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구제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원에 문의한 투자자 C 씨는 “소비자원이 수차례 공문을 보내고 연락하더니 도와줄 게 없다고만 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투자자 D 씨는 비트소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해 최근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코인 출금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D 씨는 이 내용증명을 비트소닉에 전달했지만 결국 반송됐고 추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난립한 가상화폐 거래소는 200여 개로 추산된다. 검증이 안 된 중소형 거래소 가운데 비트소닉 같은 ‘먹튀’ 거래소가 시한폭탄처럼 숨어 있다는 우려가 많다. 특히 투자자 보호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런 거래소에 발을 들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어도 구제받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가상화폐 법제화를 통해 책임 소재를 정하는 게 맞겠지만 우선적으로는 이 같은 사기 피해 행위에 대해 누가 컨트롤타워를 맡아 문제를 해결할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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