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겉도는 산업안전정책 <3> 플랫폼 혁신-근로안전 논의 시급
7월부터 14개 특고 산재 적용 강화… 판정 절차 복잡-기간 길어 효과 의문
근로자 “인프라 등 환경개선” 요구… 기업들 산재보험 의무 가입 등 나서
“규제보다 기업 자발 참여 유도를”
“진짜 목숨 걸고 달리는 겁니다.”
배달기사 A 씨는 오토바이 시동을 걸기 전에 숨부터 크게 한 번 들이쉰다. 배달시간에 쫓겨 곡예운전을 하다 보면 스스로도 아찔하다고 여겨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A 씨는 “위험한 건 알지만 기름값, 식대, 보험료 빼면 실제로 손에 쥐는 것은 많지 않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플랫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종사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택배기사, 배달원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고 기업들 역시 플랫폼 근로자의 권익 향상이라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성장 산업인 플랫폼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고, 산업 특성에 적합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그 이코노미’ 그늘, 택배 과로사
9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과로사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기사는 지난해 15명, 올해는 3월 말까지 4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택배기사들은 파업을 벌이며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7일에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총파업을 결의하고, 전체 조합원 6400여 명 중 1907명만 참여하는 부분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배달원들은 근로 시간에 비해 처우가 낮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상황이다. 처우가 낮다 보니 과로를 하거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운전을 무리하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시간 근무에 노출된 택배기사들의 과로사가 문제가 됐지만, 보험료 부담 등을 이유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14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산업재해보험 적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했고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법 개정에 따라 택배기사, 배달원 등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관행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 다만 산재보험 가입 확대만으로 플랫폼 근로자의 산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재보험 가입이 늘어도 산재 판정을 받기까지 복잡한 절차와 많은 기간이 소요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택배기사 B 씨는 “인프라를 개선하든지, 산재 처리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재 발생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플랫폼 시장 장악을 위해 속도 경쟁을 벌여온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근로자와 기업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규제보다 플랫폼 기업의 자발적 노력 유도해야
기그(gig) 근로자들의 안전과 지위를 강화하는 추세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배달원 등 플랫폼 근로자를 피고용자로 재정의하며 이들의 지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배달원들의 죽음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플랫폼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섣부른 규제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문제 해결책을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대표적 플랫폼 기업들은 제도 변화에 앞서 근로자의 권익을 강화해 지속 가능한 성장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쿠팡은 초창기부터 직고용을 통해 근로자들의 산재를 인정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직고용된 근로자는 산재보험에 반드시 가입돼야 한다. 이 때문에 쿠팡의 산업재해 신청과 승인 건수는 지난해 각각 782건, 758건으로 CJ대한통운(신청 26건, 승인 24건) 등 주요 택배물류 기업보다 많았지만 그만큼 산재 처리를 적극 지원하고 투명하게 운영했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10월 플랫폼 기업 중 처음으로 플랫폼 종사자 노동조합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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